간이역 27. 나의 태어남

 

기도

주일-금요일:  탈출2,1-4 

               루카 1,76-80 

               2사무 12,24-25

               판관 13,24

               창세 21,2-3.

 

치유를 위한 아픔

이 묵상 중에 너무 아픈 기억들을 만나면 어떤 이들은 의도적으로 피해버립니다.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 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그 상처 속으로 들어가서 머물러 있는 것을 너무나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상처의 고통이 보이면 좀 울다가 얼른 기도를 정리해버립니다. 이것은 상처를 보기만 하고 약을 바르지 않고 끝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 상처는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가, 생활 속에서 그 상처를 다시 일깨울 만한 어둠이 들어오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옵니다. 사실 우리는 이 상처의 근원을 치유 받기 위해서 자기 역사를 여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상처의 아픔에도 충실히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그 상처는 뿌리가 되어서 계속해서 자라납니다. 그리고 종내에는 어둠이 되어서 끊임없이 우리 발목을 잡아 끌어내립니다. 그러므로 기도 중에 상처가 드러난다면 사실 기뻐해야 합니다. 어둠은 빛 가운데로 나아가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도망치고픈 유혹이 들 때 더욱 더 그 상처에 머물러서 치유 받아야 합니다. 

 

<기도 이야기 17>

“아들을 낳자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2 사무 12, 24)

 

1.

“아들을 낳자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는 말씀에 머물렀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엄마 자궁에서 머리만 반쯤 나오고 까만 머리가 눈에서 가려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찢어지는 고통 속에 계시다는 것이 느껴졌고 난 “아퍼, 아퍼”, “무서워, 무서워, 살려줘요.” 외치고 있었습니다. 계속 눈물이 납니다. 끙끙 소리가 나오고  계속 아프다고 외치며 살려 달라 하다 지쳐 가만히 있게 되었고 엄마의 모습을 보다 끝났어요.

 

2.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아픈 것처럼 엄마의 고통을 느끼며 내가 엄마를 냉랭하게 대하는 이유, 또 왜 엄마를 사랑으로 대하지 못 하고 사랑의 마음이 안 생기는지를 생각했어요. 똑같이 아프고 고생했는데 더 머물러야 되나 봅니다. 그 아픔으로 오늘 나의 아픔보다 엄마의 아픔 속에 잠시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기인 나도 지친 듯 했습니다 그러다 나도 기도 중에 잠이 들었나 봐요.

 

3.

나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하면 엄마에게 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나 봐요.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가 깨달아지며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어제는 묵상을 해도 마음이 냉랭했는데 오늘은 연민의 감정이 생기네요.

 

 

4.

오늘 나의 고통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너무 아픈 게 싫어서 내 고통을 보기가 싫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이겨내고, 나의 고통에 머무르고 있으니 내가 밖으로 나왔고 포대기에 싸였는데 안심이 되었고 따뜻했습니다. 그건 잠시였는데 또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아기는 외로움을 느껴요.  다음에 또 기도할 때 외로움 가운데 있으면서 ‘아기가 왜 외로울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한참 있으니 내가 나를 안아 주었는데 성모님이 안아 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안아 주고 달래 주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넌 귀한 존재다.” 이렇게 힘들게 나왔는데 한참 있다가 끝났습니다. 내일 그 안아주는 모습을 연결해서 들어가려고 합니다.

 

5.

다시 고통 속으로 가는 게 너무나 싫었습니다. 하지만 견디고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분만 중의 고통을 떠올렸습니다. 자궁 안에서 나오지 못하고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 같은데 꼬르륵꼬르륵 물에 빠지는 기분 같은 게 느껴지며 계속 꼬르륵꼬르륵 하다 끝났습니다. 기도 중에 자주 ‘어서 이 고통이 끝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위로 떠올랐다가 ‘난 이 고통을 봐야 돼.’ 하며 다시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활 속에서 너무나 불안해졌고 두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껏 불안하고 두려운 것을 잘 이겨냈는데, 어찌 된 것인지 마음이 너무나 불안합니다.

 

6.

오늘도 고통 속에 머물렀는데 아직도 ‘아퍼.’ 눈물이 마구 나오더라구요. 물이 오늘은 목구멍에서 꼬르륵꼬르륵하며 죽을 것 같았어요. 살려달라고, 살고 싶다고 계속 그러고 있었는데 구해 줄 사람을 기다려도 아직 안 와요. 이렇게 계속되다 조용해졌고 기도가 끝났습니다. 다음 날도 계속 거기에 머무르려 합니다. 그런데  생활 속에 찾아온 불안이 많이 조용해졌네요.

 

7.

오늘 묵상은 어떤 현상은 없었고 물이 목까지 찼을 때로 갔습니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건 같은데 그때처럼 강렬하지는 않고 그냥 계속 그러다가 머리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어요. 누군가 사람을 기다렸는데 차가운 쇠 같은 것이 닿은 겁니다. 감자 분만했다는데 그 기계가 아닌가 해요. 그러다 나를 돌리는 것 같았는데 공포였어요. 그리고 세상에 나와 이젠 살았구나 했는데 또 사람이 없어요.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포근함을 느끼고 싶었는데 혼자였어요.

‘주님은 어디 계시죠?’ 했었는데 떠오르는 말씀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었다.”였어요. 그리고 성모님이 안아 주는 것 같았고 평화로웠습니다. 아이는 만족했어요. 그때 깨달은 것은 하나하나의 생명을 성모님이 받아 안아 주시는구나, 였습니다.

 

8.

기도가 다 끝났다 싶었는데 조금 전 묵주기도 중에 그 차가운 금속 느낌의 장면으로 가더니 그때 내가 분노했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을 기다렸는데 차가운 금속이 왔으니까요. 막 욕도 올라왔어요. 예전 성령 세례 받고 단식할 때 욕이 올라와서 창피했지만 성사 보곤 해서 없어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었더라구요. 그러더니 ‘없어지고 그럴 수가 있나요?’ 계속 되뇌니 말씀이 올라왔는데 내가 함께였다는 말씀과 내가 살렸다는 말씀이었어요. 그리고는 아이는 다시 평화로이 있네요. 성모님이 안아 주시는 것은 없었어요. 혼자 노는 아이로 가야 하는 것 같은데 아니라면 끝낼까요?

 

9.

난 냉랭한 편인데 누가 조금 나에게 사랑을 주는 것 같으면 그 사람에게 의지하는 버릇이 있어요. 그것이 이 상처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왜냐하면 그 분노에 다시 가서 사람의 포근함을 기다렸는데 사람이 아닌 차가운 공포가 느껴졌고 사람에 대한 깊은 원망이 있었어요.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렇게 깊은 배신감 같은 것이요.  계속 그러면서 따뜻함을 맛보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없었어요. 주님은 어디 계셨느냐 여쭈어 보는데 계속 어제의 강한 분노보다는 따뜻함, 그리움만 강하게 올라왔습니다. 내일 다시 여기부터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그 갓난아이에게도 분노가 있는 건지 어른인 내가 투영된 건지 모르겠네요. 어찌되었든 욕구가 충족 안 된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요. 그런데 다 고통 속에 태어났을 텐데 그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면 정말 어려운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