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좋아하세요?"

어쩜 그 질문에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대답해버렸을까? 100% 거짓말은 아니었다. 출근길 만원버스 안에서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는데 그즈음은 구스타프 말러였다. 여기저기서 하도 말러 얘기를 하길래 들어보는 중이었다. 나도 아는 척 옆에서 한마디 거들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교향곡 1번과 5번. 끝까지 다 들어 본 기억은 없었다. 늘 중간에 잠이 들었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말러는 너무 어려운 음악이었다. 일단 너무 길고 복잡했으며 낯설었다. 한없이 우울하다가 기약 없이 몰아치다가 허무하게. 그것이 말러에 대한 당시 내 느낌이었다. 그런데 덥석 좋아한다고 해버린 것이다. 그런 나를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알고 보니 그는 말러 '덕후' 일명 말러리안이었다. 젠장. 허세부리다 망신당할 위기였다. 그래서 듣기 시작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고 무작정 그냥 1번부터 10번까지 순서대로 들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공연 실황 DVD, 말러에 대한 책도 샀다. 졸며 깨며 듣던 시간들이 지나자 서서히 말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버벅거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그는 경기필 구자범 지휘자의 말러 강의에 나를 데리고 갔다. 그 때부터였다. 내가 말러에 빠진 건.

1889년 11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구스타프 말러의 첫 교향곡의 초연 무대가 펼쳐졌다. 아침을 깨우는 뻐꾸기의 지저귐, 멀리서 울리는 나팔소리. 1·2악장은 좋았다. 하지만 3악장부터 음악은 점점 낯설고 그로테스크하게 진행됐고 4악장에 가서는 기괴한 불협화음이 몰아쳤다. 전곡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야유와 조롱이 터져 나왔고 비평가들은 혹평을 쏟아냈다. 한 신문은 말러에게 쓸데없이 작곡에 기웃거리지 말고 평소 잘하던 지휘에나 집중하라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그날의 연주곡이 내 첫사랑이자 청년 말러의 고뇌가 담긴 교향곡 1번 ‘거인’이다. 1번 교향곡은 듣고 있으면 20대의 내가 떠오른다. 젊음이라는 빛나는 자아를 가졌지만 아직 덜 자라 어리석었던, 모든 것이 불완전했던 그 시절. 청춘의 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