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다시 태어 나고 싶어요”

‘어떻게...

이 아인 다른 엄마가 부러운 걸까?

아! 그럴수만 있다면 내가 먼저 12번도 더 다시 태어나고 싶단다.얘야‘

그러나, 비록, 이 생에선 처음으로 해 보는

엄마라는 경험이지만

애들한테 내 속에 오가는 모든 속을 다 털어놓을 만큼

순진치는 않아서

나는 우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자애롭게 (들리기를 바라며^^)

조신하게 말해본다.

“그럼 한번 다시 태어난 셈 쳐 보지 그러니?”

“어떻게...

나는 벌써 이만큼 커 버렸는데...“

“니가 처음 태어 났을 때, 넌 정말 조그맣고 연약했었어.

아빠는 네가 너무 작아 부서질까봐 꼭 안지도 못 하셨고...

그 후 너는 이렇게나 컸다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작고 귀여운 아이고,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니 말... 행동들... 몸짓들... 하나하나가

그땐 수천번, 수만번을 연습하고서야 온전히 네 것이 된 거거든.

그러니...

다시 태어 나고 싶다면

여행을 가 보면 어떨까?

아주 먼 나라로...

좀 길게 ...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는

모든 걸 다 하나하나 새로 배워야 할 곳으로....

니가 처음 태어 났을 때처럼....“

그리고 내 딸은 여행을 떠났다.

먼 나라로...

말도 풍습도 문화도 달라서

비록 어릴 때 처럼은 아니지만

꽤 많은 것을 새로 배워야 하는 곳으로....

한 동안 나는

“엄마, 엄마! 여긴 참 신기 해....” 와

“엄마, 엄마 여긴 참 이상해...” 사이에서

어릴 때처럼 내가 보듬어 주지 못한 체

혼자 커 가는 아이가 안쓰러워

아무리 아이가 원했대도

말도 안 통하는 외국으로 덜컹 대학을 보낸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었다.

그런 내 딸이 지금 방학을 해서

집에 와 있다.

내 옆에 와 있다.

하지만

떨어졌었어서 애틋하고

못해 준 거 많아서 미안하고.....

그건 그저 엄마 맘 인거지

딸은 우리 품을 떠나 자유롭게 사는 외국생활이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기만 하단다.

잠깐을 와 있는 그 사이에도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나와는 차분히 얼굴대고 얘기할 틈이 없다.

그래서 그런가

떨어져 지낸 몇 년의 시간이

어떨 땐 다른 집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낮설음도 살짝 줄 만큼

묘하게 어른스러움을 풍기며 앉아 있는 아이가

내겐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틈만 나면 보로로, 애 옆에서 스토킹 중....^^)

“얘, 너 기억 나니?

전생에 니가 영혼 세상에 있을 때

엄마가 찾아가서 내 딸 하자고.....,

이 생은 많이 외로울 테니까

니가 와서 친구처럼 지내 달라고 부탁 했다는 말...“

사랑이란 건 (아니, 결혼 이란 건 ... 인가?),

어쩜 그리도 맹목적이고, 용감할 수 있는 건지...

태어난 나라도 제대로 안 돌아 다니던 내가

오직 남자 하나 달랑 믿고 이렇게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살림을 하고 살 줄은

예전엔 정말 몰랐었다.

거기다,

외국이라 더 제재할 사람이 없어선지

밤낮없이 바쁜 신랑 대신에(노느라...)

집착 수준으로 마음을 쏟아 키운 내 딸이

그래도, 커 갈수록 이렇게 아빠 빼박이를 할 줄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분명 내 배 아파 낳았는데

나 닮은 성격은 하나도 없어서(다행히 외모는 날 닮아 훨씬 건졌지만...ㅎㅎ)

사사껀껀 부딪히는 우리 둘의 관계 때문에

급기야는 전생을 봐 준다는 힐러를 찾아가 묻기까지 했었다.

도대체 우리 둘의 전생이 어떻길래

딸과 나는 이렇게나 매사가 다른지....

그때 힐러가 들려 준 얘기가 그랬었다.

전생의 딸은 끼가 많아 짚시 였단다.

딸은 그때 당시(=전생에) 나름 동네 연예인이라

공연도 많이 다녔었는데

나는 그 공연을 즐겨 보는 , 특히 딸을 좋아하던

팬이었단다.

그러다 이 생에 태어나기 전에 둘이 (딸하고 나)

같은 영혼 세상에 머물게 되었는데

연예인으로 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일찍 병을 얻어 죽느라

금방 인간 세상으로 다시 환생할 생각은 별로 없던 딸에게

내가 가서

내 딸로 태어나자고 부탁을 했었단다.

이 생은 너무나 외로울테니(그럼 벌써 이때 노느라

밤낮없이  밖으로 돌 남자랑 결혼 할 걸 알았다는 얘긴데...)

흠___(-_-)

-아무래도 영혼 세상에서의 나는 정신이 좀 어떻게 됐었나 보다.

이런 걸 미리 다 알고서도 ok를 했다니.....

하지만 딸에게 부탁한 건 그 와중에 잘한일이었네 -

네가 내 딸로 태어나 친구처럼 지내자고....

한편 우리 딸은

이 엄마(=그러니까 나...) 한테서 태어나면

무척 숨 막히게 살아야 할 듯 싶어서

(내 성격이 좀 고답명숙 = 답답하고 고지식하고 숨막히는 성격,

이라나.....-사실 살면서 딸과 가장 안 맞는 부분이 이거다.

노는 거 좋아하는 딸과

여자는 곱다시 있다가 시집 가서 남편 그늘서 얌전히 사는게

최고라고 생각하는 전업주부가 체질인 나와....)

 어쨌든,

그래서 계속 거절하다가,

아빠가 될 사람을 보니

어라? 숨통이 좀 트일 것도 같아

이런 엄마 밑에선 절대 다시 방탕해지지는 않을 테니

못 이기는 척 태어 났다는데...

그러면서 그 힐러는 진지하게 , 정말 진지하게

남편하고도 자식하고도

“좀 놀아줄 것”을 당부 했었던게

나한테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었다.

사실, 남편을 만나게 된 것도 그렇고

미국 와 살게 된 것도 그렇고

내 의지로 된 건 하나도 없는 판에

어쩌다 내가 여기까지 왔을까? 가 궁금할 만큼

예측 불허의 일들은 계속 터지고

(주로 남편이 사고치는... -남편 미안^^)

 원인이라도 좀 알까 싶어

사주니...전생 세미나니 최면술이니...

기웃 거렸던 거지만

확 믿지도 , 완전 부정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의 내게

그래도 아무 사전 정보도 없는

말도 잘 안 통하는 외국인 힐러가

보자 마자 대뜸

“남편 하고 놀아 주기

딸 쪽에서 이해해 주기“를

숙제로 내미는게 너무 신기해서

영계에서는 아마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었나 보다

결론 짓고

열심히 그 숙제를 풀었던 결과

우리 관계가 비약적으로 좋아진 건 맞다.

아빠는 정말 내 놓고 끼돌이고

내 딸은 겉으론 얌전한데 속으론 노는 거 엄청 좋아하는 걸이라서

커 갈수록 둘이 꿍짝이 맞는 걸 볼 때마다

새록 새록

그 힐러가 참 신통했던 것도 같고...

(지금은 나이가 많아서 돌아 가셨다)

회상에 젖은 내게

딸은 특유의 짤랑 짤랑 한 목소리로

경쾌하게 결론 짓는다.

“난 전생 같은 거 안 믿는데...

그래도 엄마가 꼬셔서 왔다니까

끝까지 책임져는 주시겠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삼겹살 call?“

(반주 한잔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옵션이다.^^)

비록 학점은 좀 그었지만 (바닥으로....)

사는게 너무 너무 재미있다며

반짝 반짝 빛나는 딸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전생에 내 딸의 팬이었던건 확실히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