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사고를 쳤다.

우리집 주치의다 싶이 가까이 지내는 한의사 선생님께서 부탁했다고

아픈 학생을 한명, 우리 집에 있게 하기로 약속했단다.

방 하나 빈 걸, 하도 이 후배, 저 동생이 채워 대는 게 싫어서

렌트를 내 줘야 겠다고 얘기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손님?을 물고 왔다.

아이는, 중학교때 부터 보딩 스쿨로 보내져

방학 때 왔다 갔다는 했지만

혼자 생활한 게 벌써 15년도 넘어가는 대학생이다.

혼자 오래 지내다 보니 건강이 많이 안 좋아져,

부득이 치료를 위해, 소문 듣고

우리 한의사 선생님한테 치료를 부탁 했다는데

한 두달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좀 오래 머물 곳이 필요했단다.

우리가 처음 미국에 오자마자 인연 맺은 한의사 선생님은

정말 현세의 허준 같은 분이라

다른 주에서도 환자들이 선생님만을 보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힘들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귀찮게 해 드렸으니

도와 드릴 일이 생긴 거야 반가운 일이지만

내 자식도 말 안들으면 미운데

다 큰 남의 자식까지....

막 거절을 하려는데, 남편이 덧 붙인다.

“하숙비 넉넉히 주겠데. 그 부모님이....

벌써 여러 곳에 다녀 봤는데

우리 선생님 아니면 안되겠나봐.“

그렇다면야...^-^

하지만 너무 속물 같이 보이긴 싫어

짐짓 토를 달아 본다.

“그래도 요새 애들... 머리 굵어서, 말 안듣고

이상한거 하고... 그럼 어쩌지?“

그랬더니, 벌써 얘기는 다 끝내 놓은 듯

남편이 자신 있게 말한다.

“마침 병원에 와 있길래 나도 봤는데

애가 아주 얌전하더라고. 잘 생겼어.

안됐잖아. 그 나이에....“

그래, 그래, 우리 남편, 이렇게 넘치는 박애정신이 매력이지 -_-

자기 부인한테만 빼고....

부인은 가족이니까... 남이 아니니까....

박애란 본디 남을 내 가족 같이 사랑하는 거니까...

(ㅎㅎ 가끔 , 우리 남편이 내 머리 속을 오가는

이런 반항? 적 생각을 읽는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렇게 해서 부랴 부랴 손님방을 정리하고

남편은 공항까지 가서 그 학생을 픽업해 왔다.

그리고, 봄이라 하나 아직은 쌀쌀한 날

두툼한 털 쟈켓을 걸쳤는데,

그게 전혀 어색치 않은

귀티나는

아이라 하긴 어른이고

어른이라 하긴 눈빛이 너무 맑고

청년이라 하긴 다소 유약한

남자 사람이 하나 불쑥,

우리 집 거실에 섰다.

형아가 생긴다는 사실에 다소 흥분한

우리 막동이의 수줍은? 인사를 역시 수줍게 받으며....

오! 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겹쳐지는

‘응답하라 1988’의 택이...

몸 약하고 신경 예민한 것 까지 완전 닮았다.

(사라 입 귀에 걸림^^)

“아유, 그래 잘 왔어. 앞으로 잘 지내보자.”

언제 뚱했던가는 완전 잊어 버리고

넘쳐나는 모성애로 무장한 박애주의자가 되어버린 사라.

헌데, 꽃향기는 잠깐

다음날부터 내겐, 꽃이 지고 있었다.

사연인즉슨

남편은 대표적인 올빼미 과라

결혼해서 이날 이때까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자리에 드는 사람이다.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서울의 24시간 음주가무 문화를 즐기느라

밤이 낮같은 생활이 아예 습관이 되 버려

몸이 거기에 맞춰진 듯 싶다.

규칙적으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 난다.

그래도 다행히, 개인 사업을 하니

좀 늦은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밤 늦게 까지 일을 하는 걸로

시간표를 조절해서 그럭저럭 잘 지내고는 있지만

항상 기상 시간에 얼른 일어나길 힘들어 해

이날 이때까지

내 가장 큰 직업은 ‘인간 알람‘ 이다.

이상하게도 남편은 온갖 기계음의 (알람)소리들은

가볍게 무시하며, 애들이 (알람시계) 목이 터져라 외치다

장렬히 산화할 때까지도

쿨쿨 자는 무신경의 소유자라

때가 되면 손으로 한번 뒤집어 줘야 한다.

그것도 시기를 잘 맞춰야지

혹시, 신선님한테 천도 복숭아라도 받고 있는 순간에 깨웠다간

1년 내내 “너 때문에... (술이 아니라....) 간이 안 좋다”는

원망을 달고 살아야 하며

막 용이 여의주를 주려는데 내가 깨워 산통다 깨는 바람에

친구 빛 보증 서주고는 집 한 채 그대로 날리기도 해야 했다.

나야 뭐, 사주를 보니,

그거 아님 식구들 건강으로라도  떼워야 할 판이라

(안 좋은 운은 꼭 안 좋은 값을 한다)

돈으로 때우는게 100배 낫고,

렌트 사니까 집 관리 안해도 돼서 편하기만 하고,

애초에 즉흥적이고 지극히 감성적인 남편의 투자 방식에

회의를 가진 터라, 놀라지도 않았었다.

아뭏튼, 그렇게 수십가지 이유와 더불어

건강은 끔찍이 생각하는 습관 때문에(생각만...-_-)

잠자리에서 “벌떡!”은

남편 사전엔 없다.

그런 남편하고 산 날이 안 산 날을 넘어 섰건만

아직도 ‘새 나라의 어린이(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인 사라는

이른 아침에 나 홀로 깨어

이것저것 아침의 한갓짐을 즐기다가

시간 되면, 남편한테 가서 얼굴 표정 잘 살피고

(경험상으론 인상 쓰고 있는 게 가장 깨우기 탈 없는 때^^)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서방님. 시간 됐어요. 일어 나세요.”

하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한번 뒤집어 놓고(자세 교정 하라고)

10분 후에 또 뒤집어 놓고

10분 후에 기분 내키면 간단한 맛사지를 해 주며 깨워 주곤 한다.

(‘나는 현모양처’ 놀이에 빠져서^^)

전업이라, 전적으로 남편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만큼

아침의 이 일과는 거의 ‘(신성한) 의식화’ 되어

웬만해선 깨지지 않고 지켜지는 우리 집 풍경이다.

하지만, 남편한테 하도 데어서

우리 애들은 유치원부터

각자의 알람에 맞춰,

혼자 일어나 준비하는 걸 생활 화 시켜 놓아서

다행히도 아침 기상의 이 신성한? 의식은 남편만 하면 되었는데....

그런데,

이 사랑방 손님, 택이가 절대로 혼자 못 일어 날 줄이야...

그것도 아주 애절하게 “이모. 10분만 더...”를

최소한 3번은 외쳐야 일어날 줄이야.

그래도, 응답하라의 ‘내 택이’를 닮은 덕에

기쁘게 그 임무(택이 깨우기)를 사라의 아침 일과에 넣어 줬더니

일요일 아침,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우리 집 막동이가

슬그머니 도로 침대로 가 눕는다.

그러고는 ‘어디 아픈가?’ 따라가 보니

기다렸다는 듯 씩씩하게 외친다

“엄마. 10분 만 ...”

‘악! 사라야. 너 도대체 전생에 무슨 짓을 한거니

어째서 이렇게 (내 남자들은) 줄줄이 깨워줘야 하는 거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