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손님 택이가

손목을 그었다.

어느 날, 느낌이 이상해서 자다 깨서 나와 보니

택이가 거실에 나와 앉아 있었다.

불 꺼진 창가에, 어린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아직 안 잤니?” 다가가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엄마들의 느낌은 동일한 걸까?

선뜻한 느낌에 손목을 채어 보니

세상에, 작은 스위스 나이프로 손목을 긋고 있었다.

평소엔 조용하기는 해도 명랑한 편이고, 언행도 반듯해서

생각보다 잘 적응하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놀라서 칼을 뺏으려 하니

20살을 넘은지 한참 된 어른 아이가

상처 입은 짐승처럼 으르릉 거리고 있는데

눈빛이 달랐다.

순간, 가서 흔들기 전엔,

잠 잘 땐 옆에서 난리굿이 나도 꿈쩍 않을 남편은

어차피 도움이 안될테고(안 깰테고...)

아직 어린 아들이 보기엔 너무 충격적인 장면일 거라는 생각에

터져 나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삼키고

아이를 다시 보니

그 쟂빛 눈동자의 무심함과 체념한 듯한 슬픔이

마치 내 가슴을 칼로 그어내듯, 아릿하게 만든다.

그 아픔이 너무 생생해

몸은 이미 어른이 다 된 아이를 아기처럼 껴안고

나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어쩌다가...어쩌다가.....”

이유야 어쨌든 간에

모두가 잠든 밤, 불 꺼진 거실에 혼자 남아

손목을 그어 대고 있었을

그 아이의 막막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해.....

생판 아무 관계도 아닌

그저 하숙집 아줌마일 뿐인

낮선 아줌마의 눈물이 이상해설까?

아이는 몇 번 도리 질을 하며, 벗어 나려 하더니

이내 체념한 듯 조용해 졌다.

그리곤 가만히 내 품에 머리를 기대고 있길래

연고를 찾아서 상처에 발라 주곤

침대로 데려가 애기처럼 눕히고 토닥 토닥 재웠다.

힘들어도 살자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자고....

그리고 하나의 생명이 태양계를 돌아 지구에 안착하기까지

얼마나 엄청난 확률을 거치는지....

그렇게 태어난, 네가 얼마나 소중한 목숨인지....

악몽처럼 잦아드는 침묵이 무서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따질 겨를 없이

중얼, 중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너의 특별함에 대해

끝없이 떠들어 댔다.

아이는....,

무엇에 지친걸까?

혼곤하니 땀방울이 송송 돋아 나는 이마를

나즉하니 찡그리며 간간이 뒤채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덩치는 커다란 어른이지만

우리 아들 보다도 더 어리게 느껴지는 연약한 영혼에

나는 가슴이 뻐근하리만치 아팠다.

한밤중에 깨어서

자기 손목을 그어가며

그 아이가 확인하려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잠결인 듯

“미안해요. 엄마” 하고 중얼 거리며

내 손을 꼭 잡은 아이 손을 보며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어 한참을 더

잠든 아이 머리 맡을 지켰다.

완전히 잠이 들었는지,

고르게 들리는 숨소리를 확인하곤 방으로 와

남편을 깨워서 확인해 보니

아이고, 이 양반들아(한의사 선생님, 남편, 택이 부모님....)

나만 모르는 일이었다.

택이가 우울증으로 주기적으로 자해를 하는 아이라는 걸....

한의사 선생님한테 치료 받는 다는 것도

그 쪽(정신) 계통 이라는 걸...

“아니, 왜 말을 안 했어?. 그렇게 중요한 일을...?”

은근히 믿었던 한의사 선생님한테까지

배신감을 느끼며 남편한테 따지니,

이 양반, 시침을 뚝 딴다.

“내가 말했잖아. 아프다고, 그래서 맘도 좀 불안하다고....”

‘아이고, 이 사람아. 그게 그 아픈 건 줄 누가 아냐고...

우울증이면 우울증이라고 분명히 말해야지,

자해까지 하는 아이를....‘

뒤 늦게 사실을 안 한의사 선생님은

무지막지 미안 해 하시며

남편한테 다 들어 알고 있는 줄 알았다 사과를 하셨지만

왠지 짜고 치는 고스톱 같은 느낌들이

물씬 물씬 풍기는

사라만 빼고 온 사방이 다 아는

우리 손님 택이의 우울증은

상당히 심한 편이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고

(음모?를 꾸민 이들은 이런 사라 성격을 믿었을

거라는 거에 전 재산 건다. 내가....-_-)

믿을 건 인터넷 밖에 없어

‘자해...어쩌고...’로 폭풍검색을 한 후

뭣 보다 별스럽지 않게, 그저 평범히 대하라는

조언이 많기에

그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를 깨웠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밥도 챙겨 주고, 손목에 연고도 발라주며 넘겼더니,

이내 방긋 방긋

아이도 예전의 ‘내 사랑 택이’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부터

사라의 일상은 결코 돌아 오지 못한다.

(현재 진행형...-_-)

우울증인 아이는

밤에 증세가 더 심해지고,

비오는 날 증세가 더 심해 진다기에

그런 날 밤이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이 곁을 지키며, 놀아 주고, 재워 주고

한 밤중에 배고프다는 말에

간식을 만들어 주고....

갑자기 24시간 베이비 시터 모드로 들어 선 내게

(그날도 간식을 준비하는데)

택이가 뒤에서 슬그머니 껴 안는다.

‘어머나! 이거, 우리 남편도 안 해주는 백 허그...*.*’

사라 입 귀에 걸리는데,

이 스윗 가이가 한마디 더 보탠다.

“고마와요. 이모 - 호칭을 이모로 정리해서...-”

자해를 하거나 말썽을 피우고

폭력을 일삼는 아이들은

사실 끊임없이 상대의 애정을 확인하는 중이라는

심리학자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착한 짓 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거야

너무나 당연한 거니

내가 이렇게 나쁜 짓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해줘!

하는 소리 없는 외침의 결과라는 것이다.)

실지로 이런 아이들의 속 내는

약하기 그지없어

보통 땐 외려, 소극적이고 부끄럼 잘 타는

수줍은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우리 택이는 확실히 이 부분에 해당 되는 듯 싶었다.

그리고,

자해를 할만큼 외로왔던 사랑의 확인이라도

하고 있듯이

끊임없이, 나를 따라 다니며

엄청 치댄다.

(아무래도 응답하라 1988의 작가는

뭔가 알고 쓴 듯....

그 드라마 택이도 누군가를 좋아 하면 엄청 치댔는데...)

그리곤,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집, 남자들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건

“이모 나 돈까스 먹고 싶어요.

이모 점심으론 김치 찌개...

오늘은 비오니까 부침개....“

그런 식의 주문 식단제에 합류 해 버렸다는 뜻이다.

거기다 더해서

“이모, 손 맛사지...이모 머리 아파...”

나를 아예, 전속 요양사로 강제 배정 시키곤

“이모, 나 이거....이모 나 저거....”

능력 있는 비서로 아주 제대로 부려 먹으신다.

그러나 어쩌쓰가.

사라가 죽고 못사는 보검이랑 똑 닮은 택인 걸....

찡그리고, 투덜거려도

사랑 고파 저러지...안 쓰럽기만 한걸...

내 헌신적 무한 애정에 힘입어

나날이 밝아 지는 모습이

이쁘기만 한 ‘내 사랑 택이’인 걸!

그나저나 사라야, 너 전생을 진짜

어떡하고 산걸까?

아침마다 3남자가 깨워주는 (내) 손길을 기다리고

저녁마다 3남자가 재워주는 (내)손길을 기다리고

날마다 3남자가 (밥) 차려 주는 내 손길만 바라보고

......

딸아,

넌 여자로 내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날개 떼어낼 때 아프지 않았었니?

엄마에겐 너만 정말 천사구나. 흑흑~~~

P.S 이런 연고로(택이...) 한참 동안

사라 일은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한참동안, 칼럼진도가 좀 슬로우 해질 듯...

그래도 내 품에 날아 든 길 잃은 어린 양을 먼저 돌보고.

틈틈이 찾아 올께요. 마냥 느려진 진도에 용서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