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니게 감기가 걸렸었다.

꼬박 일주일을 죽만 먹으며 죽다 살았다.(죽 다 먹어서....ㅋㅋㅋ)

 

생각해 보니

5학년(50대) 올라 오면서 부터

해 마다 겨울이면 한번씩 호되게 감기를 앓더니

올해는 아예 가을부터 시작 했나보다.

분명 아무 짓도 안했는데

자고 났더니

코에서 뜨거운 김이 확, 확...

열은  펄펄 나고,  소화는 안되고, 머리는 깨진다.

속이 미슥거려 아무 것도 못 먹고

온갖 냄세는 왜 그렇게 비위 상한지....

완전 입덧이 따로 없다.

 

다른 건 다 무던한 편인데

이상하게 양약은 몸에 잘 안 받아

꼭 다른 탈이 나는 편이라 그 흔한 타이레놀 하나 안 먹고 산지 몇십년

우리집 주치의다시피 한 한의사 선생님은

내 증세는 맥도 안 보시고 처방 하신다.

"갱년기 들어서며 피가 모자라 냉기를 몸이 방어를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리곤 남편이 받아온 열감기용 한약을 꼬박 꼬박 먹고

열은 3일만에 떨어졌는데

이젠 때 없이 목이 쉰다.

전화를 했더니 목감기약으로 가져 가란다.

그래서 또 이틀 , 얌전히 먹었더니

증세는 다 나았는데

몸이 나른한게 영 식욕이 없다.

 

체중계를 올라가보니

어마마!  7파운드나 빠졌다.

앗싸라비야~~~  이거 할 만한데.... 내친 김에 GO!

아팠던 것 보다 살빠진게 더 신난 나는 이 참에 '환자모드'를 당분간 지속하려고

굳은 결심을 한다.

 

내가 아프면 우리 집 주방은 올 스톱이 된다.

부엌일에 관해선 전기 밥솥 열고 닫는 것도 못하는 우리 두 남자는

(온갖 수를 다 해봐도 이건 못 가르치겠다.-_-)

한술 더 떠서 입맛은 청화대라, 어찌나 까다롭고 높은지

세상에서 제일 용서가 안되는게

'맛 없으면서 양 많은 음식'이라고 외치며

내가 아픈 걸 제일 무서워 하는데(음식을 안해주니....ㅋㅋ)

요번엔 된통 걸렸다.

 

나 또한 먹는 걸 너무 좋아해

아파도, 이렇게 오랫 동안 식욕까지  잃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일주일 앓고 나니

두 남자, 눈 밑이 퀭하다.

그치만 뭐, 없어서 못 먹거나

(나처럼) 못 먹을 병으로 못 먹는 거라야

걱정이 되지.

'(댁네들) 그건 안 먹은 거라고요.'

(물론 속으로만.... )

 

식구 많은 집, 막내 딸로 자란 나는

시집 갈때 까진 정말 밥도 안 지어 보고 시집을 왔다.

손이 야무져 온 동네 일꾼이다시피 했던 우리 엄만

여자가  일 솜씨 좋으면 일만 많아 진다고

내겐 아무 것도 안 시키다 (시집 가면 어차피 평생 해야 한다고....)

시집을 보냈다.

그런데 얼결에 결혼하니 시어머니가 외동 딸이라

사돈 할머니가 함께 살았는데(살림을 맡아 하셨다)

이 분이 음식이며 살림 솜씨가

요새 애들 말로  장난이 아니어서

난 정말 같이 산 3년이 남들 30년일 만큼

시집살이를 해야만 했었다.

 

그리곤 한국 식재료 구하기 만만찮은 미국에서

인생의 가장 큰 낙을 '맛있는 것 먹는 낙'으로 치는 서방님 시집살이가 또 30년....

그러다보니,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주방을 일터 삼아 연구 정진(?) 한 결과

이젠  음식 솜씨 만큼은 .....^^

부작용은 저렇게

미국 살면서도 한식 매니아가 되선 (그것도 아주 고급의 깊은 맛...)

바깥음식을 못 먹다시피 하게 된 우리 식구들 입맛이다.

 

그래도

맛 있는 거 안해 주면

세상 살기 싫은 모습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니...낙이 없니....

어깨 늘어 뜨리고 깡 술만 비워 대는 남편이야 할 수 없어

입 맛에 맞는 음식을 대령해 보지만

(이 분, 또, 한번 먹은 음식은 3일 내에 주면 안 된다.

남은 음식 먹는 법도 없고

같은 음식 연속 먹지도 않고....

항상 고기가 들어 가야 하고....- 그것도 매번 다른 종류.....)

요즘은 나이까지 드셔서 , 그 모든 것에 부드럽기까지 해야 한다.ㅠㅠ)

 

애들은, 하도, 음식 투정하면, 내가 경기를 하니까

내 앞에서 투정은 안 하는데

입맛에 안 맞으면 차라리 굶고 있는 편이다.

(그러게 , 다들 이 결혼 말릴 때

하지말껄

식성 좋고, 먹성 좋은 내가 이런 인류도 있는 줄 알았냐고...(.-_-))

 

하지만  이번엔 정말 많이 아픈데다

우리 부모님은 두분이 다 고혈압이라

나도 본태성 혈압(유전적인 고혈압)을 주의해야 한단 소리까지 들은터에

열나면서는 혈압도 막 180을 찍어 대니

서방님이 쫄긴 쫄았나 보다.^^

'밥'소리 한번 않고 아들 까지 해결 시킨 걸 보면.....ㅋㅋ

 

문제는 나였어서

밖에서 사다 준 죽은 한 숟갈 넣자 말자 도로 올라 오고

녹두 한 줌, 쌀 한 줌 넣고 물만 한 솥 부어 슬로우 쿡커 중 불로

푹푹 끓인 멀건 죽도 몇 숟갈 뜨면 땡!

도무지 몸이 음식을 거부 한다.

그래도 한약을 먹어 그러나 며칠 그랬는데도 힘들지도 않고

몸도 가뿐하니 (혈압도 120 정상^^)

이제 낫긴 다 나은 것 같은데

줄어든 체중계 바늘이 나를 유혹한다.

 

한의사 선생님 한테 전화하니

몸이 자체 정화를 시작 한 것 같다고, 기운만  떨어 지지 않으면

당분간 음식 조절 더 하는게 좋겠다신다.

"혹시 저희 남편 전화하면 제가 (다 나아서) 전화 했단 얘기 말아 주세요."

입 막음 시켜 놓고

아들 올 시간에 맞춰

머리 헝클어 트리고, 먹을 거 하나도 없이 해 놓고,

침대로 들어 가 아직 아픈 척을 한다.

뜨근한 온돌침대에 팍 지져서 몸 땃땃하게 하는 것도 잊지 않고...^^(열나는 척..ㅋㅋ)

 

음식을 하다보면 집어 먹고..... ,

같이 않아서 먹고.....

그러다 보면 저녁 6시 이후의 금식, 같은 건

내 평생 불가능한 조건이었는데

아픈거 핑계대고 부엌일을 안 하니

내친 김에 한달만 해야지~~~ㅇ

 

살 빠지면 뭐할까?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는데

저녁 때 들어온 서방님 한숨 소리가 땅에 닿는다.

"당신이 아프니까 사는 낙이 없네.

아직도 아파? 이젠 나도 아파"

어머머,이거 그 유명한

"아프냐? 나도 아프다." 대사 삘 나는데?

ㅎㅎㅎ

이젠 그만 일어나 (밥해) 줄까?

에이,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그래서 사라는 아직도 갈등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