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기념일 같은걸 잘 못 챙긴다.

입 맛, 옷 맛(옷 입는 취향), 신는 신발까지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감각들에

자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 비 호감 성질들이라

뭘 골라서 사 준다는 건 엄두도 못 내고

돈으로 주자니 한 달 용돈과 별 구별이 안 가고,

이런 저런 이유로

자잘 한거 몇 개 하느니 큰 거 제대로 한 방으로 가자고

오직 생일만 챙기기로 했었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랑 설날 같은 건 식구들은 패스하고

꼭 챙겨야 하는 외부인(은 별로 없고)

하다 보니 기념일 선물 같은 건 안 챙긴 지 꽤 됐다.

거기다 딸이 대학교를 가니 친구들과의 약속에 바빠

크리스마스라고 집에서 얼굴 볼 틈이 없으니

올해는 더 기대를 안 했었다.

그런데 소포가 하나 도착 했다.

발신인은 딸, 수신인은 내 이름으로.

"뭐지?" 하고 뜯어 보니

세상에!  마스크 팩에 하니 버터 칩들

그리고, 한국말로 쓴  손 편지까지.....

 

"두두둥....엄마,아빠!

Merry Christmas!

설마 내가 선물 준비 안 할꺼란 생각은 안 하셨죠? 응?

난 누구의 딸인데~

실은 아주 많이 고민했어.

돈 너무 많이 쓰면

고생하고 부담스러우실  부모님들 위해서 뭣을 준비해 줄까?

근데 .....

(중략)

더 드시고 싶으시면 말하셈!

이제는 한국이 인끼가 식어서 쉽게 구할 수 있다니까~

사랑하는 딸 올림

P.S 글씨가 좀 엉망이지? 미안!

나, 요즘 기말 떼문에ㅠㅠ

손 아파! 내 손! 팔끔치! (우는 얼굴) WAAAH~~~"

 

군데 군데 받침이 흔들린 철자는 있어도

문맥이며 표현 법이 너무 자연스런 한국말로 쓴 편지

게다가 한참, 하니 버터 칩 유행일 때 미시에 나온 걸 보고

궁금해 하던 걸 기억하고 구해 준 마음 씀 까지....

이번 크리스마스는 정말 따뜻하게 맞게 되었다.

 

마침 친구가 와 있던 중이라

그 자리에서 큰 거 한 봉지를 뜯었다.

얘기하면서 순식간에 한 봉을 다 먹어 버렸다.

뭔가, 감자맛이 나면서도 짜지 않고 달콤하니 느끼하지 않은게

정말 중독성 있는 맛이긴 했다.

딸 아이 손 편지가 주는 감동까지 더 해져....

요즘 살살 소화가 잘 안 돼, 음식 조심 해야 했던 것도

다 나아 버린 것 같다.^^

 

미국에 오래 살 수록

한국어는 멀어지고 영어는 가까와 지지 않아

영어가 모국어인 딸과

의사 소통이 점점 힘들어 지기 시작했다.

생각 다 못해

"엄마가 영어 하는 거 보다

네가 한국말 하는 게 빠를 거 같아."

하곤, 온갖 감언이설?과 애교, 협박, 보상을 하며

딸한테 한국말을 가르치기 시작 했었다.

(물론 나도 영어 공부 열심히-나름대론....^^- 했다)

집안 곳곳을, (냉장고 속, 반찬 통까지)

한국말 카드로 도배 하다시피 하고

혹시 뜻, 모를 까봐 영어 해설까지 달아가며

매일 매일, 백 팩에 한국어와 영어로 쓴 손 편지 넣어주고

캠핑 갈 땐 짐 사이 사이마다  깜짝 편지 넣어 놓고

동화 책은 항상 한국말, 영어 2종류로 구비하고

동요까지 같은 멜로디로 양쪽 나라말 있으면 구해 가며

그 참에 내 영어 공부까지 해결 하겠다고

정말 극성을 떨었었다,

(그 정성으로 영어를 할 걸 그랬나?^^)

 

그랬더니 어느 날 부터

이렇게 심심찮게 써 오는 한국말 손 편지가

내게는 무엇 보다 가장 큰 보답이고 선물이 됐다.

오직 하나 문제는, 늘어 가는 아이 한국 말 실력과

줄어 드는 내 영어 실력이 함께 가는 것이지만....ㅠㅠ

물론, 기분만  좀 좋아지면

표리 부동 해버리는 내 성격을

아이도 충분히 알고 벌이는

고객 맞춤 서비스인지도 모르지만......

역시...., 이번에도 손 편지 한 장에

내 편애?가 시작 됐다.^^

"선물 안 주기로 한 거 다 취소!

당장 선물 사러 가야 지~~~~~ㅇ"

콧노래를 불러 가며

딸 애 편지를 냉장고 문에 붙여 놓고, 읽고 또 읽는다.

 

"내 꺼는?"

하고 있는 아들한테 한 봉 쥐여 주고

"나는 과자 싫은데...다른 건 없어?"

하고 있는 남편 건 내가 먹고....

해서, 아직도 1봉 더 남은 노란 하니 버터 칲과

냉장고에 붙여 놓은 노란 손 편지가

내 가슴속에도  노랗게

꿀처럼 흘러 넘치는 주말이었다.^^

 

이 글을 읽는 미시님들도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