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자국들이 문드러지고 

썩어진 그 위로 다시 이끼꽃들은 피어나고

또 문드러지고 

노랗고 하얗게 밤하늘의 별들처럼 핀

이끼꽃들.

그리고 그 위에 

담대하게 서 있는 세개의 십자가. 

숭고하고 신성한 마음으로 

한참동안 머물렸던 . . .

- 무루사발 마을에서 -

이 알베르게를 다녀 간 사람들의 방문록

읽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맨 마지막에

나도 몇자 남기고 . . .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길을 떠나고

몇몇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지한 비상식품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는 모습들이 보이기도 하고 . . .

이 곳 알베르게는

아침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먹을것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자리에 일어나면 세수만 하고

챙겨서 길을 떠난다.

같은 숙소에서 잠을 잤던

미국 텍사스에서 온 올리비아씨

그녀도 나처럼 다리가 아파서 절둑절둑 거리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는 올리비아씨에게

하나로만 짚고 다녀도 괜찮냐고  물으니

자신의 지팡이는 무척 강해서 불편하지 않다고~

내가 가진 스틱 2개중 하나는 이미 팜플로나에서

발등의 통증때 너무 세게 짚어서인지

그만 그때부터 고장이 나서

자꾸 접혀지고 그래서 다시 고정시키면  몇 걸음 못 가서 또 접혀지는데

올리비아씨의 나무스틱은  통나무 지팡이라

튼튼해서 고장이 날 것 같진 않다.

숙소 입구에서 같이 걷던 올리비아씨가

같이 걷다가 내가 사진찍는 동안 앞서 걸어간다.

설렁설렁 걸어가는 올리비아씨

자유로운 순례자의 모습 ~

아침햇살에

빛이 나는 밀밭 풍경을 보며 . . .

아름다운 밀밭 풍경을 바라보는 사이

올리비아씨는 벌써 저 만큼 멀어져가고~

어제 내려왔던 파르돈 산을 바라본다.

어제는 비가 내렸었는데

오늘 아침엔 햇살이 가득한 모습에

어제 그 곳 알베르게에서 쉬고

오늘 아침에 출발하였더라면

페르돈 산 정상에서

나만의 좋은 시간을 가졌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지나간다.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들판은 더욱 푸르름으로 변한 듯

세상이 청량하고 ~

아침햇살에 빛나는

밀 한 포기 한 포기 마저도

사랑스럽게 보이는 새 아침~

바람도 잔잔한

이 순간이 참으로 좋다.

세상 부러울 것 하나도 없을 것 같아~

제 집을 지고  마실가는 달팽이 한마리

배낭을 매고 가는 나나

너의 집을 지고 가는 너나

우린 비슷한 처지~

^.^

오늘 내가 도착할 목적지는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

그 마을 가기 전에

 에우나테 라는 작은 시골을 들려서

그 곳에 있는 산타 마리아 성당을 돌아 볼 예정이다.

그런데 에우나테 마을은

순례자 길 위에 있는 마을이 아니라

무루사발 마을에서 2.5킬로 더 걸어 들어가야 하는 곳.

사실 에우나테의 산타마리아 성당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면

아마도 신실한 마음으로  산타 마리아 라는 성당에 찾아가서

경배의식을 할텐데 . . .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산티아고 이 길을 걷기 전까지는

성당에서 경건하게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성당의 예배 의식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 . .

그런 내가 왜 사람들이 별로 가지 않는

그 곳을 가려고 하는건지?

그건

지난번 라라소냐 마을에서 만난

이레네 할머니 때문.

그 할머니가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에 가기 전에 있는

에우나테 마을에 들려서

산타 마리아 성당을 꼭 들려서 가라고 ?

그 성당은 아름답고

특별하다고?

밀밭옆으로 현대식 건물의 마을이 보이고 . . .

깨끗한 마을의

그 중앙을 걸어간다.

간밤에 같은 숙소에서 머물렸던 수녀님

오래 된 세월의 흔적

돌 제단위의 십자가

전혀 생각지 못한 세개의 십자가 형상을

무루사발 마을에서 만났다.

 십자가 3개가 있는 형상들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산 언덕에 세워져있거나

길가에 세워져 있는 모습을 간혹 보곤 하였는데

그렇다고 내 마음속에 찡...한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 마을에서 본 이 십자가는

내 머리속에 쏴한 서릿발같은 촉감이 느껴진다.

그냥 십자가 3개만 서 있었다면

이 역시 평범하게 지나쳤을텐데

이끼자국들이 문드러지고 다시 이끼꽃들은 피어나고

또 문드러지고 썩은 그 위에

 노랗고 하얀 밤하늘의 별빛처럼

이끼꽃들이 피어난 그 위로

담대하게 서 있는

세개의 십자가. 

순간

숭고하고 경외로운 마음이 든다. 

바를 향해서 천천히 걸어가니

앞서가던 올리비아씨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든다.

자신은 이미 커피 한잔 했다며 . . .

내가 배낭을 자리에 내려놓은 사이에

벌써 주문까지 해 주고 자신이 먹고 있는 

땅콩을 덜어 내 앞으로 건네준다.

단지 오늘 아침 숙소에서 같이 출발했을 뿐인데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그녀

순례자 . . . 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도

가까이 연결되는 끈인 듯?

담배연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위해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혹시 에우나테의 산타마리아 성당에 가지 않겠냐고?

물으니

올리비아씨는 그런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듯이 다시 묻더니

자신의 배낭에서 가이드 북을 꺼내어 지도를 보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거기까지 가는 데 2.5킬로

다시 되돌아 오는 데 2.5킬로

총 5킬로를 더 걷는 건데

나보고 미치지 않았냐고?

@.@

푸른 이끼가 있는 돌판에 새겨진 

MURZABAL 마을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