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를 해야만 하나요.
이 새벽에.....?
제니 할머니는 참으로 유쾌하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은 늘 세수를 안하고 출발한다고?
대신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샤워를 한다며
왜 새벽에 세수를 하냐고?
마사리페에서 비야반테 마을까지
순례길 28일차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다.
4사람이 자는 좁은 공간에
두 사람이 밤새도록 코를 심하게 골았기 때문.
새벽이 되자
조심스럽게 2층 침대를 내려와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 수면에 방해 될까봐
불도 켜지 아니하고
나의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와
주점주섬 짐을 챙기는 데
밖에는 새벽이슬이 내렸는지
복도에 찬 기운이 가득하고
의자엔 물기가 흥건하다.
세수와 화장실을 하기 위해 세면장에 가니
누군가 이미 사용하기에
잠깐 기다렸다가 들어갔는데
이 알베르게의 화장실은
솔직히 지금까지 사용한 알베르게 중에서
최악의 세면장 상태.
불편하지만
빠르게 세수와 양치를 하고
배낭을 챙겨
1층 입구에 있는 카페에 가서
카페라테를 주문하면서
등산화 끈을 하나 하나 묶는다.
카페라떼 맛은 참으로 좋았으며
어제 삶아 두었던 계란과
슈퍼에서 구입하였던 바나나로
아침식사를 하는데
.
.
어제 알베르게 옥상의 빨래를 걷다가 잠시 만났던
프랑스에서 온 멜리사 여사께서
굳모닝~ 인사를 하신다~
어제 저녁 잠시 스친 인연인 뿐인데
아침에 다시 보니
오래 전에 알았던 사람처럼
잠 잘잤나며....
그녀는 화장실 사용하기가 불편하다며
아예 오늘은 세수를 안하고 그냥 출발하겠노라고~
미소를 띈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데
세수를 하지 않았다하지만
건강한 모습이 느껴진다.
분홍색 야구모자를 쓰고 계시는 분은
호주에서 온 제니 할머니
이 할머니는 참으로 유쾌하게
인사를 하면서
자신은 늘 세수를 안하고 출발한다고?
대신에 목적지에 도착하면
샤워를 한다며
왜 새벽에 세수를 하냐고?
@.@
명랑하게 말을 하면서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거냐고 묻기에
오스피탈 마을까지만 걷겠다고 하니
자신도 그럴거라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말투는 부드러운데
그녀는 지금 반바지를 입고 있는 상태
밖은 온도가 몇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찬서리가 내릴정도로 쌀쌀한 기온.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반바지 차림인 걸 길을 걸으며 보아왔다.
그들은 햇빛에 그을림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추위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고
산길에서 넘어져 다칠것에 대해서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는 듯
나이가 젊은 사람이나
연세가 있는 노인분들이나
한결같이 반바지 차림의 가벼운 복장
나는 그렇게 걷지 못하기에
그런 그들이 간혹은 부럽기도 했지만
나는 나대로 나만의 방식대로
걷는 것 또한 편안하므로
끝까지 긴 바지와 바람막이 자켓으로 무장을 하고
길을 걸었다.
아주 무거운 중등산화를 신고서 . . .
@.@
따뜻한 카페라테는
추운 아침에 더더욱 맛이 좋았고....
그 덕분에 아침식사를 든든히 하고
Jesus 알베르게를 떠나
마을 길위에 들어서니
어느 새 햇살이 동네길을 환하게 비추어 준다.
오늘은 어디까지 걸을까.....?
어제 저녁에 가이드북을 생각하다가
많은 사람들은
마사리페 마을에서 아스토르가 마을까지를 목적지로 하고
일찍 출발한다는데
나는 아스토르가 까지는
30킬로 를 걸어야 하는데
무리해서 걸으면 그 곳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발톱의 통증이 있기에 무리하면서
급하게 걸을 필요는 없다싶어
아스토르가 마을까지의 중간 지점에 있는
오스피탈 마을 로 오늘의 목적지를 정하고
15킬로를 걷기로 하였다.
늘 24킬로 혹은 25킬로를 평균적으로 걷다가
15킬로정도는 설렁설렁 걸어도 될 것 같은
가벼운 마음에
오늘 아침의 나의 발걸음은
부담이 없고
.
.
마을 길 바닥에 그려져 있는
노랑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
.
누군가 길에
물병을 놓아두었다.
그 전에는 잘 안 보였는데
이 마을
아니 레온을 넘어서부터
길위에 혹은 집앞에 물병을 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왜 길위에 물병을 두었을까?
지나가는 순례자들 중에
혹시 목이 말라 힘들면
이 물을 먹으라는 뜻일까?
햇살이 좀 더 밝아오는 마을 길을 걷는다.
조용한 마을
그리고보니
이 마을에서는 현지인을 본 기억이 없 . . .?
슈퍼마켓과 알베르게 쥔장들 외엔?
사람 사는 마을에서
사람을 보기가 힘들다니 . . .
아침햇살에 빛나는
예쁜 길가의 양귀비 꽃들을 보며 . . .
새로운 아침
새로운 발걸음
마을을 벗어나자
바로 보이기 시작한 수로
푸른 물들이 마을마다 넘실 거리는
물이 풍부한 스페인 시골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엔
가뭄이 심해서
물 구경하기 정말 힘이 드는데
이 나라는 가는 곳마다
물이 지천이라니.....?!!!!
나의 앞으로
두 사람이 스쳐간다.
그런데
너무 낯익은 저 차림새는?
@.@
언젠가 요르니오스 마을의 팬션에서
여자들만 자는 방에
저 커플이 나체로 한 침대에 자는 걸 보고
프랑스에서 온 할머니들이 무어라 야단을 하였던 . . .
그러나
연세많은 할머니들의 야단에도
전혀 아랑곳 없이
저 차림으로 유유하게 자신들의 침대를 빠져나갔던
그 커플들이 지금 나의 앞을 지나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 통성명은 전혀 하지 않았기에
아는 체 할 필요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흘러서
다시 길위에서 만나
한 방향으로 걷고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뿐~
.
.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 위로
벌레 한마리가 기어나온다~
헤이~
이 길로 너가 나오면
네 생명이 위험하잖아?!!!
녀석을 스틱으로 밀어서
풀속으로 넣어주고 . . .
( 손으로 집기엔
나의 배낭무게가 나를 힘들게 하므로
허리를 굽힌다는 건 나에겐 아주 큰 고통이기에.....)
얼마큼 걸었을까?
또 검푸른 물결이 휘청거리는 수로가 나타났다.
물....
물이.....
좋다.
보기만 해도
촉촉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물결의 흐름이
좋고
.
.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일하는 트랙터 소리가 사방에 흩어지고
.
.
어제처럼
푸른 새싹들이 싱싱하게 자라는 들판을 보는 데
푸른 야채에 대한 끌림은
어쩌지 못할지경 . . .
된장국
된장쌈
상추 겉절이
모두 모두
먹고 싶어
.
.
경사가 있는 길을 오르며 . . .
길가 풀밭에 묵묵히 서 있는
순례자 비석
그 비석의 표지판을 의지하며
길을 한발 한발 걷는다.
Who are You?
당신은
왜 . . .
이 길을 걷고 있는거요?
.
.
어디만큼에
누군가 벗어두고 떠난 등산화 한컬레가 얌전하게 놓여져 있다.
아마도 무거워서 벗어놓고
가벼운 신발로 걷는 순례자가
혹시 이 운동화가 필요하면 사용하라고 두고 간 걸까?
그 운동화 옆에 몇자 글자가 적혀있기래
읽어보니
The Nailed?
Pilgrim
2015
나보다 조금 먼저 앞서 간 사람이
신발을 벗어놓고 간 듯한데
Nailed....못학빈 순례자 ?
이해가 될듯 말듯 . . .
길은 다시 평탄해졌고
저 멀리
나무들의 숲이 아름답게 보인다,
망망한 벌판에 바람막이처럼
길게 서열되어 있는 바람막이 숲?
길 오른쪽으로
성당이 중앙에 있는 마을이 보이고 . . .
순례자 루트에 있지는 않지만
지나가면서 바라보는 마을의 평온한 정경에
발걸음 잠시 멈추어 본다.
.
.
.
길의 방향이 바꾸어져
이젠 내리막길
나의 앞에
가벼운 크로스백을 매고
천천히 가볍게 걸어가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뒤를 나도 모르게
그녀의 발걸음 보조에 맞추어
뒤를 따라 걷는다.
보통 작은 백팩을 매고
이 길을 걷는데
크로스백을 매고 걷는 사람은 처음으로 보기에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 . .
이 길을 걷는 순간부터
다 사연이 되는건데~
.
.
나의 앞을 천천히 걸어가는
여인의 뒤를 계속 따라걷다
어느 지점에서 그녀의 보조에 맞추다보니
너무 느린 발걸음이 되기에
그녀를 뒤에 두고
먼저 앞서 걷는다.
푸른 벌판 가운데
길이 있고
그 길에 그림자를 만들어 주는
거대한 수양버들나무 한 그루
참 잘 생겼구나
나무가
.
.
근사한 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걷는다.
질퍽한 길이 나타나고 . . .
오늘 아침에 출발해서
이제 한 낮이 되어가는 이 시간까지
수 많은 종류의 길을 걷는다.
흙길
시멘트길
돌길
물기에 젖어서 끈적끈적한 길
오르막 길
내리막 길
평평한 길
.
.
.
어떤 길이 눈앞에 나타날 때
이 길을 걷는 순례자에겐
선택의 기회는 별로 없다.
주어진 길을
그저 통과해야 하고
걸어야 할 수 밖에
.
.
간혹 그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하여
이탈을 할수 있겠지만
그동안 보아왔던 몇몇 사람들은
다시 그 길로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곤 하였기에
이탈보다는
순응하면서
그 길을 걷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
까미노 여정
한 남성 순례자가
자신의 배낭에 신발 하나를 묶고
나무 지팡이를 들고
나의 앞을 터박터박 스쳐간다.
그 남성 순례자 앞에
동네가 보이고 . . .
노랑 화살표는
길 밑으로도 그려져 있는데 . . .
녀석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또 해찰을 ~
^.^
조그만 개울가 옆에
하늘거리며 피어있는
빨강꽃과
작은 들꽃들
싱그러운 이 시간들이
좋아서
나중에 집에 가면 만나지 못하게 될
이 풍경들이 그리울 것 같기에
한참을 더 머물다가
.
.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간
마을을 향해
나도 발걸음을 옮긴다.
저 마을은 어떤 곳일까?
마을입구에 있어야 할 마을 안내 표시는 보이지 않고
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올라가니
산타루치아 라는 알베르게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에 카페가 보인다.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야겠다~
.
.
.
마사리페에서 비야반테 마을까지
순례길 28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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