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우리글을 우리글답게 쓰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글을 쓸 때 누구나 습관적으로 자주 쓰는 표현, 단어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자신의 습관을 잘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글'을 쓰는 문이 하나 열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의 습관을 함께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보석같은 우리말
보석같은 우리글
모두 같은 말이니까요!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게
우리말은 일본어/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말 그대로 사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일본/미국에서 들어 온 지식/정보들을 번역할 때 우리말 식으로 하지 못하고
그 쪽 말들에 충실했던 탓이라고도 합니다.
물론, 번역의 탓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요.
오늘은 '가지다'
즉, 영어의 'have'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난 번에도 몇 차례 했지만,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다뤄보렵니다)
영어의 'have'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그대로 '가지다'라고 하면 자연스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말/우리글의 어법/문법에 잘 맞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새 신문, 방송, 책, 문학 등에도 빈번히 쓰여
알지도 못하는 새, 우리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현실입니다.
예를 보시지요.
1. 상대 회사는 자본 분배와 인력 분산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접촉을 갖자고 제안했다.
접촉을 갖다
이런 말은 우리 말에 원래 없습니다.
우리말로 '접촉'을 활용하는 방법은 이러합니다.
접촉하다(동사)
접촉(명사) 을(목적격 조사/토씨) 하다(동사)
상대회사와 접촉하다
상대회사와 접촉을 하다
접촉을 갖다===========영어식 표현(have)
영어에서는 '가지다'에 해당되는 명사가 아주 많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웬만한 명사는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추상명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그렇지 않습니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추상명사를 '가지다'라고 잘 표현하지 않습니다.
우리말과 영어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다른 말입니다.
이렇게 쉬운 '가지다'란 동사에 깃든 '언어'의 정서까지 다릅니다.
그러니 우리말/우리글을 제대로 잘 써서 우리 '정서'를 잘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1번 예문은 이렇게 고치면 우리말답게 됩니다.
상대 회사는 자본 분배와 인력 분산 등을 논의하기 위한 접촉하자고 제안했다.
어떠세요?
더 간단하지 않습니까?
그냥 '접촉하다'하면 될 것을 '접촉을 갖다'라고 굳~~~~~이 표현하는 건
'있어 보여서'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습니다.
물론, 있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신문/방송 기자들이 뭔가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고 글쓰는 것보다는 좀 더 묵직하게
'있어 보여야'한다는 압박감에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끼리라도 '접촉을 갖다'가 '접촉하다'보다 전~~~~혀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파했으면 합니다. ㅎㅎㅎ
말 나온 김에 또 다른 예을 들어 보겠습니다.
뭐, 너무 많습니다만.....
2. 대통령은 국가 비상 사태에 신속하게 국무회의를 갖고 대책을 논의했다
국무회의를 갖다
이런 표현 역시 우리말/우리글로 어색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이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사실이죠!
국무회의를 갖다
이런 표현은 다분히 영어의 'have'에서 온 어색한 표현입니다.
우리말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리말로 '회의'는 '갖는'게 아니라 '여는' 겁니다.
===> 대통령은 국가 비상 사태에 신속하게 국무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저도 우리말로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이런 저런 문예지나 문학상에 도전도 하고 인연을 맺어왔지만
문학하시는 분들, 또 문학상을 심사하시는 분들에게서 귀동냥한 게 있습니다.
수백, 수천개씩 쌓인 응모 원고들을 다 읽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만 앞쪽에서 '탈락'을 걷어내는 요령은 있다고 합니다.
맞춤법, 문장호응은 기본이지만,
바로 이런 식의 '영어/일본식' 표현 역시 그 첫번째 예로 들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에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런 일본/영어식 표현들을
앞으로 좀 더 심층적으로 파헤쳐 드리겠습니다.
필기, 잘 하고 계시지요? ㅎㅎㅎ
3. 우리 정부는 한일 회담에서 온건한 자세를 고수해 번번이 손해를 보아 온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 말로 경험은 '갖는' 게 아닙니다.
"네가 이번 여름 캠프에서 정말 좋은 경험을 가졌구나."
'You had a great experience from this summer camp."
영어로는 완벽하게 자연스럽지만
우리말로는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어떠세요?
그런데 3번 예문은 왜 자연스럽다고 느낄까요?
신문/방송에서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그렇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절대 '경험을 가지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말을 글쓰기에 쓰는 순간, 그 글은 그다지 좋은 글이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유명한 한국 작가(물론, 현대작가)들이 뭐 그렇게 특이하고 대단한 단어와 표현을 쓸까요?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와 표현들을 맛깔스럽게, 개성있게 조합하고 구성한 것입니다.
작가들이 '있어 보이기' 위해 쓰는 표현들은 우리가 배우고 싶을 만큼,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린 예가 많긴 하겠지요.
(물론, 잘 못 쓰는 작가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건 글쓸 때 배워 두면 아주 좋습니다.
그러나 언론 매체에서, 서적에서, 논문 등에서 '있어 보이기' 위해 무리수를 범한 이런 식의 영어/일본식 표현은
꼭 글에서 몰아 내시기 바랍니다.
보석같은 우리말, 보석같은 우리글을 지키고 싶다면 말이지요!
사실, 꼭 그런 '소명'이 아니더라도 그런 잔재를 걷어낸 글이 정말로 자연스럽고 간결하고 깔끔하고
'우리말답게' 소통이 잘 된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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