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석같은 우리말을 캐러 다니는 우리말 심마니, 크리스탈입니다.

오늘은 조금 딱딱한 듯하지만, 어떤 이론 혹은 법칙에 대해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워피안의 이론입니다.

[‘워피안(Whorfian) 법칙’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미국의  벤자민 워프(Benjamin Whorf)에 의해 개념화되고 하이드 박사에 의해 증명된 이 이론은 

언어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나오는 동시에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한다.]

(*출처/위키피디아)

Benjamin Lee Whorf

'우리말'과 관련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워피안 법칙'을 갖고 왔을지 궁금하시죠?

바로, '친가', '외가'란 단어를 말하기 위해서랍니다.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외할머니'에게서 양육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이런 경우, 아이들이 늘 함께 있는 외할머니에게 일일이 "외할머니!"하고 부르지는 않겠지요.

그냥 "할머니."라고 부를 겁니다.

그런데 친할머니가 오셔서 같이 자리하면 어찌되죠?

아이가 "할머니!"하고 부르면 두분다 "왜? 나 불렀어?"할테니 말입니다.

아이가 헛갈려하니 아빠가 친절히 설명해 줍니다.

"이쪽 할머니는 '친할머니'라고 하고 저쪽 할머니는 '외할머니'라고 하면 된단다."

그런데 이 아이는 영특해서 벌써 한자를 꽤 많이 안답니다.

그래서 묻지요.

"왜 이쪽 할머니는 '친할 친(親)'자를 쓰고 저쪽 할머니는 '바깥 외(外)'자를 써요?

난 외할머니하고 더 친한데요."

이건 제가 만들어낸 상황이지만 인터넷에 보면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여자의 탄생]이란 책을 쓴 나임윤경 교수는 '호칭'이란 ‘사소한’ 엉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워피안(Whorfian)의 법칙’을 통해 설명하고 있죠. 워피안의 법칙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가 우리의 인식 속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요지를 갖고 있습니다.

나임윤경 교수는 부부간 호칭 정도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사소하다고 치부하며 이것이 '남녀 평등'이란 대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믿는 우리 사회의 상식을 짚고 있지요.

그러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한번 보실래요?

우선, '친가' 쪽 호칭을 볼게요.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아버지의 형님, 남동생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오빠, 남동생은요?

외삼촌

이거 하나로 끝이죠.

'외큰아버지', '외작은아버지'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남편쪽 가족 호칭을 보죠.

남편 누나=형님

남편 여동생=아가씨

남편 남동생(미혼)=도련님

남편 남동생(기혼)=서방님

남편 누나 남편=아주버님

그런데

도련님, 아가씨, 서방님....

이는 근대 이전 양반가에서 아랫사람들이 쓰던 호칭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외가쪽은요?

그러니까 남편이 아내의 가족을 부를 때는?

처형

처제

처남

이게 전부죠.

이건 '지칭'이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계'를  말해줄 때 쓰는 말이죠.

실제로 그 사람을 부르는 건 '호칭'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남편이 아내쪽 가족을 부를 때는 '지칭'을 '호칭'으로 그대로 쓴다는 겁니다.

(아내는 남편 누나에게 '형님'이라 해서 '님'자를 붙이는데,

남편은 아내 언니에게 '처형님'이라고 하지는 않죠)

이걸 그대로 남편쪽에도 적용한다면 아내가 남편 가족을 부를 때 이리 됩니다.

지칭을 호칭으로, 그대로 말이죠.

부형(夫兄)

부제(夫弟)

부매(夫妹)

그런데 아무도 이렇게 부르지는 않죠~~. 

남편의 가족은 지칭과 호칭이 엄연히 구분되어 있고, 그 또한 오래 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르던 호칭을 적용해서

쓰고 있는 상황~.

또 어머니 쪽은 '바깥 외'자를 써서 '외가'라 하고요. 

아버지 쪽이 '친할 친'을 써서 '친가'가 되죠.

남임윤경 교수의 책에 있는 내용을 일부 발췌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아버지 가족 친가(親家)보다 어머니 가족 외가(外家)를 법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멀게 느끼는 데에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영향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외가가 친가보다 멀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친가중심적인 법과 문화 그리고 친가와 외가라는 언어를 만들었겠지만, 다시 이 언어가 법과 문화 그리고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중략) 하긴 친가‘親家’와 외가‘外家’의 한자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외가는 혈육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것처럼 개념화되었으니까요. 이러한 부당한 문화에 저항하기 위해 이제 사람들은 외가를 진가(眞家), 즉 진짜 가족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진가와 친가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볼 때 유전적으로 똑같은 거리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책 내용대로라면 요즘 '외가' 대신 '진가(眞家)'라고 쓰는 사람들이 생겨난 듯합니다.

이걸 꼭 '페미니즘'의 연장이라고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남녀 관계의 '똑같은 거리'에 집중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는 생각은 드네요~.

오늘은 어째, 조금 무거운 주제였나요? ㅎㅎ

anyway,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