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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날이 있다

이름 어떤 미시 (cloee) 2018-8-20  07:35:33

두 사람만 모여도 한 가지 사건은 두 개의 진실이 되어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니 공동체가 만장일치로 어떤 가치에 동의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말 못하는 아이조차 웃게 한다는 미인의 기준은 보편성을 가졌다고들 한다.

그런 절세미인도 지구를 반 바퀴만 돌아 우거진 숲 하나쯤 헤치고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황소바람이 들고나는 귀 볼을 가진 여인이나

 팔등신중의 한 등신 반만큼 정도 뽑아 올린 금 촛대 같은 목 미인 앞에서는 맥도 못 춘다

그러니 누구나 제 눈의 짝을 찾아내어 정신없이 사랑에 빠지는 아름다운 일이 있어 

인류역사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걸 거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조차도 종종 살인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역설을 ()이라고 가르친다.

피부색이나 지역, 혈통에 따라 존재의 가치조차 달라지고 사물을 정의하는 관점도 다르다

이 모두를 넘어서서 모두가 합일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부모공경이나 자식사랑 정도 일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상 앞에서는 때로 무기력해서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지로 내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난해한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보편적 가치가 하나 있으니 바로 이름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는 선물이고 죽은 후에도 나를 떠나지 않는 의리 있는 동지이다

게다가 낯선 사람과 주고받는 첫 선물이기도 하다

예수는 자녀에게 재산을 주기보다는 귀한 이름을 주라했고 

불가에서는 이름에 모든 것이 있다(名詮其性)하고 공자는 이름을 바로 해야 만사가 잘된다(正名順行)고 성찰했다

그 외 많은 현인들도 한 목소리를 내거니와 소리 공학을 통한 과학적인 증명의 시도까지 있다


이러니 이름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은 물론이고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넘어 동의를 얻은 가치 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이즈음에서 슬그머니 셰익스피어가 장미는 무엇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세상으로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그 새벽부터 할미꽃이라 불리는 애기 솜털이 보송한 꽃을 또 한 번 슬프게 할 일이다. 매혹적인 꽃술을 가진 청아한 할미꽃을 본 적도 없는 문외한이 지었음에 분명하다

게다가 아기 발바닥보다 매끄러운 애호박이 피어 무는 호롱불 같은 꽃이나 

공주정도는 되어야 탈 수 있는 늙은 호박의 황금트럼펫 같은 예쁜 꽃이 박색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몹시 부당한 일이다.


이처럼 중요한 이름을 나는 어찌된 연고로 5개나 가졌다

어릴 때의 애칭과 법적 효력이 없는 하나를 제하고도 3개가 남는다

붉은 꽃들이 만발한 것 같은 향기로운 삶을 기원하신 선친(先親)의 축복이 담긴 이름 하나.

내 나라를 떠나니 느닷없이 바뀌어버린 성이 다른 이름 하나

그러다 나와 지역사회의 편리를 위해 추가된 토착민을 닮은 이름 하나가 있다

이 셋과 아명(兒名)은 믿을 만한 권위자가 주었거나 적어도 자의든 타의든 나의 동의를 얻은 것이어서 

그나마 별 이의를 제기 할 맘은 없다.

그러나 남은 하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게 내 삶 가운데로 들어왔다.


나는 이 이름이 들어오는 것도 못 보았고 내 삶의 한 귀퉁이를 넉살좋게 차지하고 앉은 것도 한동안 몰랐다

오래되지 않은 지인이 나를 생경한 이름으로 거듭 부를 때까지 그랬다

나는 멀쩡한 통용어를 놔두고 신조어를 만들거나 길지도 않은 낱말을 줄이고 비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공은커녕 개인적 기밀에 해를 가할 일도 아닌데 굳이 알파벳의 약자를 사용하는 것 등에도 유사한 거부감이 있다

이는 출입도 옆문보단 정문이 좋고

 초대 받을 땐 손님으로 머물고 초대 했을 땐 주인으로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 나를 사계절중의 어느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알게 된 다른 지인들에게도 그리 호칭되고 있었다.

더듬어보니 나의 뒤늦은 SNS가입이 그 계절이었다


빠른 정보화에 소극적인 내가 마지못해 가입하면서 몇 안 되는 필수 사항 어디쯤에 생각 없이 적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때가 그 계절이었던 까닭이었다

전화기는 내겐 전화기에 불과하다

이 단추 저 단추 눌러가며 연구해 보지도 않았고 그 이름이 지인들의 전화기에 뜬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등에 떠밀려서 하게 된 것이니 꼼꼼히 읽어보지 않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그 이름은 내 전화기 대화창엔 나타나지도 않는다. 나는 내 이름도 모른 채 지인들과 그간 알콩달콩 깨를 볶았던 것이다.

이제 와서 내 이름 좀 바꿉시다 할 만큼 중차대한 사안들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관계들도 아니고 번거롭기도 했다

이름을 그다지 부를 일도 없을 듯 해 그대로 두자고 마음먹었다.


근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내가 그 이름을 내 삶의 한 귀퉁이에 두기로 결정하자 

별안간 그 이름으로 나를 아는 이들과 대화를 할 때는 근거 없는 생기와 열정이 슬쩍 일어났다.

내 이름의 계절과 꽤 닮아있는 에너지였다

좀 머뭇거려 볼만 한 일도 쉬 그러마 동의가 되고 

좀 생각해 볼만 한 사안에도 누구에게 폐 끼칠 일 아니니 짧은 인생, 고민하지말자 라고도 했다

이 이름으로라면 히말라야 등정도 계획해 볼 추세였다.


온 세상이 한데 모여 만장일치로 합의한 것처럼 이름은 정말로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그렇게 나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그 전의 나와는 몹시 다른 내가 나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이름의 탄생에 대한 해명을 그쳤다.

당분간 나는 그 이름이 발견해 준 또 하나의 나와 사귀는 즐거움을 누릴 생각이다

그러다 혹 되고 싶은 무엇을 발견하게 되면 슬그머니 새 이름 하나를 더 얹어 볼 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호박꽃과 할미꽃의 안타까운 탄식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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