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는 각자의 어미가 있는 세 아이가 있다. 

봄 날 같이 고왔던 첫 번째 여인은

 심한 입덧과 난산 끝에 남편을 쏙 빼 닮은 총명한 아이를 얻었다. 

아이는 새로운 문화와 고군분투로 부대끼던 그녀에게 닻으로 찾아왔다.

아이를 향한 그녀의 짜임새 있는 사랑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고 

기다란 책꽂이 한 줄이 돌이 되기도 전에 육아 일기와 사진첩으로 채워졌다. 

칭얼거리거나 나대지도 않은 유난히 영특했던 아이는 

엄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엄마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알았다. 

그녀는 아이에게 주고 또 주며 자신의 많은 것을 주저 없이 포기하는 그런 사랑을 했다. 

엄마의 손을 꼭 쥔 아이는 반듯하고 관대하게 자랐다. 

그러다 문득 이 길이 정말 행복으로 이르는지 의심이 들었다. 

이를 알아챈 엄마는 

미련 없이 아이의 한 걸음 뒤로 자리를 옮겼지만 

가끔씩 아이는 자신이 엄마를 실망시킨 건 아닐까 염려함으로 그녀를 안타깝게 한다.

둘째 아이의 어미는 조용한 여자였다.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는 다행히 건강하게 자랐다. 

그녀는 

세상이 아름다운 곳만은 아니라는 것과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는 여인이었다. 

백 명이 사는 곳에는

 백 개의 세상이 얽히고 설켜서 돌아가는 것도 보았다. 

아이는 성정마저 그녀를 닮아 있어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소통의 시간은 평화로웠다. 

큰 아이의 엄마와 달리 그녀는 

백일이 지나도록 아이의 사진 한 장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눈과 가슴으로 넘치게 담았다. 

아이는 두 돌이 될 때까지 한 문장도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염려하지 않았다.

아이 옆에 있어주고 기다려 주는 사랑을 했다.

아이 그 자체가 감사였기에 

아이는 제가 지니고 나온 품성대로 자랐다.

다행히 두 형제는 서로를 무척 좋아했다. 

무엇이든 잘하던 제 형을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올려놓았지만 

가끔 불만이 생길 때면 

예의 사랑스런 모습으로 제 형을 쪼르르 이르기도 했다. 

큰 아이가 제 동생의 무엇을 일러바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을 

둘째 아이의 엄마는 나중에야 알았다. 

아이는 어디를 가나 물 흐르듯 만사형통을 누리지만 

작은 일을 내 버려두었다간 

일이 커지고야 제 어미에게 떠넘기고 잠수를 타기도 한다. 

제가 몰고 온 폭풍우로

 다들 물 퍼내랴 키 잡으랴 소란 중인데 

혼자 흰 돛단배 꺼내 타고 낚싯줄 드리운다.

겨우 한숨 돌리고 가슴을 쓸어 내리는 제 어미를 반겨 부르며

“이리 와 보세요. 산들바람에 고기떼가 지나가요” 하며 해맑게 웃는다.

셋째 아이의 엄마는 딸을 낳았다. 

한 날 꿈을 꾸고서 

지혜롭고 용모가 아름다운 딸아이가 자신을 찾아 올 것을 알았다.

이 아이는 10년 터울인 큰 오빠를 꼭 닮았다. 

그러나 엄마가 다른 탓에 받은 사랑의 모양은 달랐다. 

큰 아이 엄마처럼 어리지도 슬픔과 외로움에 맘을 쉬 내주지도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도 삶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이건 무엇이건

 결국은 지나간다는 것을 안 그녀는 

조바심 치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염려로 

아이를 긴장시키지 않았다. 

실수나 실패도 삶의 향기라 

그녀에게 아이란 역할이 다를 뿐 긴 여행의 동반자다. 

아이는 가끔 실수도 해 가며 담담히 살아가는 제 어미 때문인지

 스스로 기준을 세우며 

적당히 자신에게 엄격한 따뜻하고 기품 있는 아이로 자랐다. 

엄마를 어려워하지도 무례를 행하지도 않았다. 

그녀도 모르게 엄마 같은 친구가 아니라 친구 같은 엄마가 되었다. 

마음이 족한 아이는 다른 무엇으로 채워야 할 빈 공간이 없는 행복한 소녀로 자랐다.

장성한 두 아이와 막 세상에 나갈 채비를 하는 딸아이는 명절이어야 한 자리에 모인다. 

나는 같은 결의 사랑으로 세 아이를 대한다. 

어느 명절 날 두 아들은

나의 사랑과 제 어미들의 사랑이 다르다고 툴툴거렸다.

어린 동생에 대한 질투나 투정은 분명 아니었다.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쏟아 부었던 제 어미들의 여린 맘과 일상을 잘 아는 나로서는

 참으로 억울하고 난데없는 평가였다.

제 어미들은 아이들을 주체 못할 사랑으로 키웠다. 

아이의 일 초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큰 아이의 엄마는 기꺼이 유학 중인 학업을 중단 했다. 

둘째 아이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이름 조차 마음을 가다듬고서야 사랑으로 불렀다. 

쏟아져 나오던 아이들 속에서도

한 눈에 제 아이들을 찾아내고 마냥 손을 흔들어대던 

주책 맞던 어미들의 지극함이 아려서 낙담마저 밀려왔지만 

아이들의 상심이 우선이라 

잠시 둘렀던 해명을 얼른 거두어들이고 다독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아이들은 즐거운 며칠을 보냈다. 

줄게 더 있나 어떤 필요가 있지는 않나 

우직한 아들들의 맘속을 뒤적이다 아이들을 보냈다.

나와 남편만이 호젓이 남겨진 차 안으로 

쉬 바뀔 거 같지 않던 아들들의 오해가 꼬리처럼 딸려왔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쳐다보았다. 

며칠 내내 먹고 자고 뒹굴었을 뿐인 세 아이들이 주고 간 행복이 흘러 넘치고 있다. 

두 개의 보조 바퀴를 떼어내고선 

넘어지지 않게 페달을 밟으라고 

유독 겁이 많던 큰아이를 몰아치던 홍안의 사람은 간데없고 

그저 아이들 얼굴 본 거만으로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셋째 아이 아빠 얼굴을 하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아이들은 엄마만 다른 게 아니라 아빠마저도 다르다. 

우리 아이들은 세 엄마와 세 아빠를 가진 것이다. 

얼핏 흔들리던 아이들의 얼굴과 

우린 똑 같이 너희들을 길렀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제 어미의 낯빛에 따라 콩콩 걸렸을 

작은 가슴들 때문인지

찌르르한 통증과 낭패감이 밀려온다.

내 고개가 힘없이 가로 저어졌다

아가들아 미안

정말 미안…….

그래도 엄마 아빠는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너희를 사랑하고 사랑할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