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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날이 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어떤 미시 (Cloee) 2019-9-15  22:45:23


그루잠 뒤척이다 커튼을 연다.

몇 봉우리 돌아 노루막이에 되돌아섰을까

높새바람 달리다가 지쳤음일까.


시끄러운 새벽노을 열 발자국 등에 업고 뒤뜰에 찾아 왔다

여우구슬 잃었을까.

하루 모자란 천년 날에,

눈물을 박차 삼아 새벽 담을 넘었을까.

아홉 꼬리말아 틀고 

공중제비 돌다가 

창호지 한 구멍이 천년지공 깨뜨렸을까


우두커니  

은빛 털로 푸른 새벽을 누르고 선 

여우를 보았다.


일편단심 초지일관 

너는 왜 그토록 여인이 되고 싶은 걸까. 단미.

너는 전설, 추락한 신화다


태평성대와 상서로움을 전하던 네가,

앞은 작고 뒤는 커서

 허신의 칭송받던 네가

수구(首丘)하는 신령스러움 

귀감이던 네가

남의 집을 훔치고, 수초더미 머리에 얹고 ,

초라한 자맥질로 허기를 면하는구나

쫒기고 헤매다 지친 몸 누이려 무덤가를 맴도는 것이

인간을 사랑한 형벌일까.

여명에도 스러지는, 효로 인생 갈망으로 

영원을 욕보인 대가일까.

여인들이 호소한 질투의 탄원 때문일까.


달음질도 없이

 솟구쳤다 그대로 내리 꽂아

 주린 배를 채우며,

너는 그렇게라도 천상의 몸짓을 기억하려는 거지.

낮이 찾아내지 못하고 밤이 가두지 못하던 

네 지혜가

풍각쟁이 소란과 

이야기꾼의혀에 

요사스럼으로 갇혔구나.

 

너는 요지부동, 고집불통 고독한 이방인이다.

무리조차 짓지 않아 언제나 혼자.


"난 너하고 놀 수가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단 말이야"

너는 

너에게 조차도 

길들여 지지 않아.


태어날 때부터 인생을 꿈꾸는 

외로운 의식.

윤슬 신은 갈대숲보다 더 빛나는 네 털을 

넌 본 적이 없었을까,

산그늘 아래서 

상념에 젖은 네 날렵한 콧날을

 바람조차 말없이 쓰다듬기만 했을까

밤이 걷는 소리, 별이 흔들리는 소리 

만 가지 소담이

부담스러운 걸까 넌.


모두가 하늘에 오르려 

천년을 채울 때 

너는 한 숨결 인생이고파 

되레 천년을 견디는구나.

.

너는 모사가 

많은 이름 가진 

방랑하는 혼이다

힘으로 부딪혀서 먹이를 얻지도 않고 

마른 땅 애써 파서 집을 짓지 않아도 

아늑한 잠자리에 새끼들을 누이다 

달이 차면 지체 없이 

또 혼자로 길 떠나.


불여우도 

요호도 

여인의 마음을 꿈꾸며 

천년을 채우려 하루를 견딘다.

남자의 사랑을 갈망하는 너는 

처절한 로맨티스트, 자학하는 에고이스트이다.


한 번도 자신을 자신으로 사랑한 적 없는 슬픈 운명.

명예나 권력을 탐 한적 없고 

꿈을 훔치러 날개를 원한적도 없지.

다시 태어나려면 

절대 죽어선 안 되는 

모순된 생명.

하루의 모자람도 없는 천년을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도 인간이 되고픈 너

그리도 사랑이 그리운 너.

남자의 마음을 훔친 여인이고 싶은 너. 단미.

맹수의 포효나 포도밭의 달콤함도 천상의 유혹조차 널 꾀지 못해

하물며 

이야기꾼의 조롱이나 아이들의 놀림쯤이야.

 

여기가 

숲속 깊은 푸름에 잠겨있었을 때부터

네가 들르곤 했던 그 곳일까.

땅과 땅이 이를 맞대고 갈아대며 

바위를 쪼개고 

강물을 끌어대던 것도 보았을까


네 기억 속에 난 

이곳에 머무는 몇 번째 여인일까.

천 년을 채우기 위해 넌 

몇 날을 남긴 걸까 

아니면

아흔 아홉 아홉 날에 

꼬리를 들켜버린 그 밤이 어제 이었을까.

서러움 달래러 이곳에 들른 걸까.

분한 맘, 비통한 맘 못 이겨 수구할 곳으로 온 걸까

그 곳이 여기던가.

 

아니야, 아닐 거야.

네가 그럴 리 없지. 난 어쩜 널 아는거 같아.


잘려진 아홉 꼬리 밟아 밟아 온 거지

천년의 달빛을 더듬어 온 거지.

마침내 남자의 마음 훔친 그 여인 불러내어 

첫 하루 다시 살아낼 힘 얻으러 온 거지. 천장지구.

 

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천년의 시간을 건너서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다.

늘어진 은빛꼬리

사나래로 말아 올려 

내 뒤뜰에 두 개의 달이 떴다.

나는 

달빛에 들썩이는 내 옷 뒤섶을 여민다.



*우두커니 거실을 바라보며 내 뒤뜰에 섰던  여우를 만난 어느 이른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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