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란 동네 어귀에는 

구멍가게 셋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루며 마주보고 있었다. 

깔때기처럼 지리산 자락까지 완만히 펼쳐진 동네를 들어가려면 이 깔때기의 목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그 어디쯤 둘님이가 살았다.

내가 겨우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둘님이는 몸집이 큰 어른이었지만 

동네 사람 모두 그녀를 둘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그때나 지금이나 둘님이다.

어른들 말로는

어릴 때에 열병을 앓았다고도 하고 약을 잘 못 먹은 까닭이라고도 했다. 

동네 어른 손에 무어라도 들려있으면

마을 어귀 어딘가 있던 둘님이는 쏜살같이 와서 짐을 낚아채곤 앞장을 섰다. 

대개는 장바구니나 약제 같은 작은 보따리였다. 

둘님이는 누가 어느 집에 사는지 혼동하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동네 사람들은 

둘님이의 소일거리를 매몰차게 뿌리치지 않았고 보상으로 단 것을 주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라도 먹은 날이면 둘님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더운 날은 소리 없이 대문을 열고 들어와 마당 한편에 있던 우물가를 서성거렸다. 

두레박이 달려있던 우리 집 우물은 한 여름에도 얼마나 차가운지 

길어 올린 물에 발을 담그면 알알하기까지 했다. 

여름이면 수박 두 통이 늘 두레박에 달려 우물에 내려져있었는데 

냉장고에서 막 꺼낸 무례한 차가움과는 확연히 다른 시원스런 청량감을 주는 천연 냉장고였다.

아무튼 둘님이는 우리 집 우물 안 사정까지 훤히 알고 있던 동네 터줏대감이었다.

풀 먹인 모시를 정성스레 다듬이질하는 일은 어머니 일상의 큰 부분이었다. 

맑고도 가벼운 다듬이방망이 소리는 여름이 다 가도록 집 안에 울려 퍼져서 

어머니의 정다운 목소리나 진배없었다. 

한번은 손질해서 대청마루에 차곡차곡 개켜둔 모시옷들을 

둘님 이가 죄다 빨래 통에 넣고 헤적거리다 사라져버린 적도 있었다.

유과를 먹고 기분이 좋아진 둘님이 식 감사의 표현이었다. 

따지고 보면 내 어린 시절의 동네 친구였을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 동네를 떠날 때 까지 나와 말을 섞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어릴 때는 둘님 이가 큰 몸을 하고 있어서 친구인지 몰랐고 

둘님 이가 어린아이란 걸 알았을 때는 내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런 둘님이가 어느 날 시집을 갔다. 

신랑도 피터 팬처럼 몸만 큰 어린아이였다. 

연지 곤지 찍고 시집간 둘님 이가 아이를 낳은 것은 이듬해 겨울이었다.

둘님이는 신랑과 떨어져서 아이와 친정에서 살았다. 

한 집이 두 사람과 한 아이를 돌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들의 걱정과 달리 아이는 건강하고 야무졌다.

나는 오가는 길에 몇 번 영특해 보이는 둘님이의 아이를 본 적이 있었다.

까까머리를 한 아이는 이마가 동그란 것이 내 눈에도 영리해 보였다. 

둘님이는 사탕을 달라고 제 아이를 따라다니며 조르고 있었다.

나는 그 날 총총히 집으로 와 가방을 던져두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서 울었다. 

그게 측은함이었는지 인생의 불공평에 대한 분노였는지는 그냥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부모가 자식을 선택한 것인지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 것인지 

그 누군가가 마냥 줄을 그어 이은 것인지 간에 그 대가는 너무 무겁게 느껴졌던 거 같다.

학교에 입학하자 아이는 점점 총명해져 갔다. 

그러자 둘님이 오빠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아주 떠나버렸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도 하나 둘 몇 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났다. 우리 집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이 떠난 빈 방들과 햇살만 오가는 너른 마당을 한동안 견뎌내던 부모님은 

한옥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이 떠나오시던 날에도 둘님이는 여전히 마을 언저리에 서성이고 있었다고 한다.

짧게 자른 머리는 희끗해져 가는데 같이 놀 아이 마저 없는 동네 어귀에는 

손에 짐을 들고 다니는 이들도 없었고 구멍가게조차 더 이상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차 창문 너머에 아이들은 학원으로 숨어버린 동네를 

지하여장군 마냥 우두커니 지키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둘님이 소식도 야무졌던 그 아들 소식도 들을 수 없었지만 

자기가 머물고 싶은 시간에 딱 버티고 살았던 둘님이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 옛날 책상에 엎드려 복받혀 울고 있던 나를 둘님이가 보았다면 내 등을 토닥이며 

나는 행복하다고

너도 걱정 말라고, 

나처럼 다 잘 될 거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