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도 살아가면서 의사표현을 못 한다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의 성격 때문에 남편은 항상 불편해 하고 때로는 부끄러워까지 했다.  어떻게 그렇게 말을 거르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표현하며 사냐고... 그런  나 조차도  남편이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너무 어리둥절하고, 그 현실이 믿기지 않고,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하염없이 의사 오기만을 기다리고…

의사가 오면 말해주는 것을 최대한 귀담아 들으려고 노력하고…

간호사 오기를 기다리고…

약과 주사 맞을 시간을 기다리고…

병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일주일을 넘게 살다시피 하다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가령 간호사라는 직업이 좋아서 일하는 사람과 아니면 그냥 직업인 사람이 구별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일이 좋아서 하는 간호사들은 일 하는것이 벌써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침 교대 시간이 되면 항상 새로운 간호사를 만나게 된다.  진심으로 일하는 간호사들은 남편의  차트를 확인하고, 남편의 상태를 묻는 내 질문에 의학용어가 섞인 단답형이 아니라 알아 듣기 쉽게 풀어 얘기해줬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한번씩 들어와 괜찮냐고 물어 보고 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간호사와 간호보조사의 차이도 몰랐는데, 이제는 의사,간호사에게 물어봐야 될 것, 간호보조사에게 물어봐야 될 것을 알게 되고, 일 잘하는 간호사를 보며 어떻게 남편을 제대로 돌봐야 되는지를 배우게 됐다.  

묻고, 묻고, 또 묻다보니 남편 병과 관련된 웬만한 의학용어는  알아들을 수 있게 될 정도였다.

장기간 병원에 있으면서 병원 직원과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사들과 겪은 것들을 다 열거한다면, 맘같아서는 병원을 뒤집어 엎어도  열 번은 뒤집어 엎을 일들이 많았지만, 남편과 나 스스로를 위해 부정적인 것 보다는 긍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아픈 남편과 수시로 병원에 장·단기로 입원하며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병원에서는 딱 요구하고 물어보는 것 만큼만 해 준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알아서 하겠지’, ‘간호사니까 나보다 더 잘 알겠지’ 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리는 것이 좋다.  그들도 끊임없이 실수를 하고, 내가 그 실수를 발견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반복을 한다. 

예전에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실수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천만의 말씀!  ‘의사가 수술용 가위를  몸에 넣고 봉합했다’라는 믿기지도 않고 말도 않되는 뉴스같은 일이 남편에게도 일어나고 있었다.

남편 곁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묻고 확인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