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동안 안 그려지던 그림이 어느날 갑자기 밀물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밀물처럼 밀려 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밤을 새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영감이 사라지기 전에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 했습니다.

남편 옆에서 간호하느라, 아이들 걱정으로, 남편 걱정으로 여러 가지  걱정이 불면증으로 와서 고생을 하던 제게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참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남편이 자다가 일어나서  제가 없는 걸 알고 혹시 불안해 할까 봐 남편 서재 복도에 캔버스를 펼쳐 놓고 몇칠을 정신없이 그림만  그렸습니다. 남편도 제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게 좋은가 봅니다.

이때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그려지는 그림에 남편도 놀라고 저도 놀라고,  이런게 다 어디 숨어 있었지?

이런 열정이 그동안 어디 있었지? 하면서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그림들이 밝게 그려지는 걸 보니 내가 잘 견디고 있구나라는 안도감도 있었고요.  

복도에서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아들이 학교 갈 때마다 까치발을 들고 복도를 지나야 합니다.

집안이 온통 페인트 자국 천지입니다.

남편이 말합니다 ‘작업실 가서 그리지 그러냐?’고   제가 속으로 대답합니다 ‘나도 그러고 싶지 당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혹시 나 필요하면 바로 달려 갈 수 있게’

하지만 남편이 작업실에 가서 그리라는 말이 무섭게 저는 모든 도구를 작업실로 옮겼습니다.  작업실이라고 해도 같은 집에 있는데 남편 안방과 많이 떨어져 있는 것 뿐입니다. 저는 그날 이후 작업실에서 제가 원하는 대로 커다란 캔버스에 하루종일 그리고 매일 저녁 밤을 새면서 그림을 그립니다.

남편이 가끔 들어와서 제 그림 평을 해 줍니다. “나는 이게 좋아” 남편은  매번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들을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그렇듯 그렇게 밀물처럼 밀려왔던 그림 그리고 싶은 욕구가 쌀물처럼 사라졌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업실을 치우지 못하고, 정리도 못하고, 작업실에 쳐진 비닐도 걷어 내지 못하고 한 달을 기다렸지만 그 열정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짧은 열정 덕분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  몇 개를 제 그림 컬렉션을 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으며 작업실 정리를 했습니다.

남편은 이번 작품들 중에서 특히 두 작품을 맘에 들어 했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골라야 될지 모르겠다며 혼자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자신 서재에 걸고 싶다고... 그야말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있는데 말입니다.

남편이 떠나간 후 저는 하루의 대부분을 남편 서재에서 보냅니다.  

뭐 별로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그렇게 서재에 앉아 있던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림을 아주 크게 그리는 관계로 그림 하나를  건다는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꼬박 하루를 들여서 그림 걸 준비를 하고 드디어 남편이 좋아하던 두 그림을 남편 서재 걸었습니다.

전혀 남편 서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좋아할 것 같습니다.

가기 전에 걸어 줄 걸... 남편이 이 두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본인 서재에 걸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남편한테  ‘만불씩 주고 사’라고 말했던게 후회가 됩니다.

많이 미안합니다.

그때 그냥 걸어 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