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학교에 가는 첫 날입니다.
전날, 아빠와 함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조그만 갈색 종이 봉지에 산 물건을 담아 옵니다.
이 때부터 이 갈색 종이 봉지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봉지는 아이의 도시락을 싸가는 도시락 가방이 되고, 아이가 잠을 못자고 뒤척이다 손전등 놀이를 하면
손전등을 덮는 커버가 되기도 합니다. 그 뿐인가요? 신나는 캠핑을 갈 때는 이런 저런 용품도 담고,
귀여운 강아지 간식도 담지요.
아이는 커서 대학생이 됩니다.
대학에 간 아이는 기타 악보를 작은 갈색 종이 봉지에 담습니다.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종이봉지는 함께합니다.
아이는 여자친구에게 청혼을 합니다.
결혼식에서 공중에 뿌리는 색색의 색종이를 종이봉지에 담아 갑니다.
아이는 결혼해서 아기를 낳습니다.
종이봉지는 아기를 달래주는 모빌이 되어 줍니다.
그 아기가 커서 아이가 됩니다.
소년의 아이는 할아버지를 좋아합니다.
예전에 소년이 함께 장을 보러 가서 처음 종이 봉지를 함께 가져왔던 그 아버지가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었죠.
할아버지는 나이가 늘어 아들과 함께 합니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종이 봉지에 그들만의 추억을 담습니다.
이젠 낡아서 구겨지고 여기 저기 테이프가 붙었지만 그래도 갈색 작은 종이봉지는 이 가족과 함께 합니다.
세월이 더 흘러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은 갈색 종이봉지의 여행은 어떻게 될까요?
종이봉지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그 여정의 끝을 당신이 함께하세요~.
- -- -- -- -- -- -- -- -- -- -- -- -- -- -- -- -- -- -- -- -- -- --
마트에 가면 물건을 담아 오는 갈색 종이 봉지.
마트에서는 대개 플라스틱 봉지를 주고 이런 갈색 종이 봉지는 베이커리 숍이나
도넛 가게에서 볼 수 있다.
요즘 세상에 얼마나 질좋은 종이가 많은지.
이런 갈색 종이 봉지는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
얇고 버석거리고 색도 칙칙하고.
그래서 내용물을 빼고 나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그런 작은 갈색 종이봉지가 한 소년을 거쳐 3대를 이은 여행을 한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하지 않고 말이다.
3대를 거치며 종이봉지는 그들의 추억봉지가 된다.
무엇을 담기에 아주 좋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거기에 추억을 담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종이봉지는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그러지 않을까?
질좋고 화려한 색감의 종이로 사는 사람도 많지만
작은 갈색 종이봉지처럼 작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작다고 여긴다.
그래서 마음도 작아지기만 한다.
그러나 종이봉지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아무 쓸모도 없다고 여겨져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뻔한 종이봉지는 3대를 거쳐 아름다운 추억여행을 한다.
오늘도 쓰레기통으로 직행시키고 싶은 이 못난 내 마음을,
꼬깃꼬깃 구긴 내 마음을 펼쳐 본다.
손으로 꼭꼭 다져서 이쁘게 펼쳐 본다.
그리고 봉지처럼 오무려본다.
무언가를 담아야지.
좋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담아야지.
중요한 건 종이봉지가 아니라 그 안에 담는 내용물이니까.
어디에 담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담는가가 중요한 것이니까.
나는 지금 봉지 얻으러 간다.
2
쪽지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