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어린 우리들에게 엄마의 띠가 소띠라 아버지의 쥐띠보다 기가 세서 상극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는 믿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신앙인이라면 그런 말씀은 안 하셨을 텐데...

아버지의 이야기들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몇 번씩 반복해서 들은 이야기들이지만 오래 전 기억들이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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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외동딸이셨고 외할아버지는 만석군의 장남이셨다.

 외가는 황해도에서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여 개화된 집안이었다.

 외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세브란스 의대를 2회로 졸업하신 의학박사로 송화 읍에서 병원을 하셨고

작은 아버지는 정신고등학교교장을 지냈다.

 외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인 '소래 교회'를 세우신 서 경조 목사님이시다.

 '기독교 백 년사'를 보면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교를 졸업한 7인의 목사님 중 한 분이시다. 살고 계시던 집 사랑채를 교회로 삼아서 1883년 최초의 소래 교회가 생겼다.

당시 목사님의 장남이 병원일로 바쁘셔서 장손이신 외할아버지가 모시고 사시며 엄마가 후에 소래 교회가 된 그 방에서 태어나셨다.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은 장연 읍에서 화제였다.

  동네에 처음으로 자가용 승용차가 밀려들어오고 신식결혼을 하니 동네사람들이 다 구경 왔다고 한다. 집안으로는 아버지가 밀렸다. 그 때는 엄마가 손해 보는 결혼이라고들 생각 했겠지

 아버지는 검정 양복, 엄마는 하얀 한복에 머리에 화관을 쓰고 면사포를 늘어뜨린 앞에 들러리 소년 몇 명이 꽃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흑백사진이 빛 바랜 앨범에 꽂혀있었는데 미국으로 올 때 짐을 줄인다고 사진을 빼서 보관하다 분실되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ㅠㅠ

 외할아버지는 연희 대 전문대(지금의 연세대학)을 나오시고 키가 180이 넘는 풍채가 좋으신 분이셨다.   아버님은 서 병자 호자 되시는데 상해 입시정부에서 김구선생님의 오른팔로 일하시다 안타깝게도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도 정신고교 3학년 때 독립운동에 연루되어 상해로 망명하여 김규식박사와 같이 김구선생님을 도와 일하시다  조국으로 돌아와서도 부잣집 아들이 팔도 유람하는 걸로 위장하여 많은 독립자금을 독립군들에게 전달해주셨다고 한다.

 후에 김구선생님께서 임시정부요원들과 귀국하셨을 때 만나서 악수를 하며"자네 아버님이 지금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  하고 눈물을 글썽이셨다고 회고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워낙 사람이 호인이고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인지 사업을 한다고 여러 차례 사기도 당하고 실패를 하셨다.  한 번은 목재소에서 필요한 목재를 사러 많은 돈을 가지고 배를 타러 가는 길에 고향사람이 그 돈으로 동태를 사서 팔아 돈을 불려서 목재를 사러 가자고 꼬였다고 한다.

귀가 여린 할아버지는 많은 돈을 벌 생각에 솔깃해서 동태를 잔뜩 사서 배에 가득 싣고 가는데

운이 나쁘게도 화폐 개혁이 될 때라 돈들을 안 풀어서 팔리지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날씨마저 더워져서 동태가 녹는 바람에 대동강에 그냥 다 던지고 돌아갔다고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부추겨서 사업을 하신다고 하다 사기를 당해서 우리 집을 망하게 한 후에

돌아가실 때 까지도 아버지께서 모시고 돌봐드렸다.

 내가 초등학교5 때는 방송국에서 나왔다고 여자랑 남자 두 명이 와서 내 기억으론 '마지막 독립 유공자의 후손'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겠다고 했던 것 같다.

그 때 이미 할아버지는 돌아 가신 후였고 아마 할머니께서 인터뷰를 하신 걸로 알고 있다.

 후에 장연 읍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증인 두 사람만 세우면 외할아버지를 독립유공자로 추대하겠다고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 부모님은 집이 완전 망해서 시골에 은둔하다시피 했던 때라 작은 할아버지께 일임했다가 그냥 흐지부지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 때 내가 커서 이런 내막들을 바로 알았더라면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