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남양주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남양주 하고도 별내면 그리고 청학리에서 나고 자란 나는 여전히

꿈을 꾸면 내 고향집에 가 있다.

내 고향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었다.

그린벨트라는 제도로 인해 개발이 되지 않은 탓일까?

내가 성인이 되어 고향을 떠날 때까지 그곳은 시골이었다.

원래는 양주 땅이었는데 양주를 두 군데로 나누다 보니

양주와 남양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남양주....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남쪽에 빛 드는 곳...

별내면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별이 흐르는 냇가.

그리고 청. 학. 리. 어찌 말로 다할까? 거기에 우리 마을은 응달마을이었다.

응달마을하고도 아랫마을...

풀이해 보면 남쪽 빛 드는 곳에 별이 흐르는

냇가가 있는데 그곳에 청학이 홀연히 날라와 물을

마시곤 더운 빛을 피하려 아래 응달마을로 찾아왔다. ^^

우리 집은 아래 응달마을 가운데 자리 잡은 곳이었다.

작은 언덕 위에 지은 집은 기역 자 모양의 한옥이었는데

부엌이 매우 넓은 집이었다. 부엌에는 가마솥 두 개가 있었으나

 언제고 불은 큰 가마솥이 있는 곳에서 피워졌다.

부엌 뒤편에 커다란 장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장작을 모아두기도 했다.

부엌 앞쪽으로 안방이 있고 안방을 끼고 안방만 한 마루가 있었다.

마루 옆에는 건넌방이 있었고 건넌방도 안방 만했다.

건넌방 옆에는 광이 있었다.

광에는 또 하나의 작은 가마솥이 있었고 광에는

농기구 들이나 연탄이 늘 쌓여있었다.

광 옆으로는 우물이 있었고 우물 옆으로는 장독대와 음식물을

씻고 빨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장독대 옆에는 커다란 사철나무가 있었는데 이사 철 나무는 흡사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았다. 

우물을 돌아 작은 화장실이 있었고 화장실 안에는 농약들도 같이 있었다.

마루와 광과 부엌을 끼고 안마당이 있었고 부엌 뒷문으로

나오면 엄마가 만들어놓으신 꽃밭이 있었다. 꽃을 좋아하신

 엄마는 여러 가지 꽃들을 심어놓으시고 꽃이 피는 것을 즐거워하셨다. 

꽃밭 옆에는 커다란 밤나무가 있었고 밤나무를 기점으로 우물까지

연결되는 뒤뜰에는 배나무와 자두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다.

배나무와 자두나무 뒤로는 개나리 울타리가 있었는데

 개나리 울타리는 우리 집과 남의 땅 경계선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개나리 울타리 뒤에는 동네 할머니의 살구나무가 열몇 그루 있었다. 

또 앞마당을 기준으로 니은 자 모양의 소유사가 있었다.

소유사를 나가면 소 운동장이 있었고 집 앞에는 밭이 있었다.

집터로만 보면 우리 집이 아랫마을 중에 가장 넓은 집이었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는 30분 정도를 걸어가야 했는데

산길로 가면 30분이 걸리지만 동네 앞개울을 건너가면

삥~돌아가야 하니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울 동네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학교로 갔는데 언제고 산길을 통해 갔다.

학교는 별내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지만 내가 다닐 때

까지만 해도 국민학교였다 별내 국민학교는 뫼 아래라는 동네에 있었다.

뫼는 산의 순우리말로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학교에 가서 실컷 공부하고 뛰어놀고 집에 올 때는

 모 아래를 지나 삼밭골로 가야 하는데

삼밭골 또한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학교에서 봄과 가을에 소풍을 갔는데 언제고 소풍은 동네 수락산에 갔다.

수락산 아래는 동학골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동학골이나

청학리나 참 .. 예쁜 이름들이다. 동학골은 청학리에 속해있는 마을이다.

가을 소풍을 다녀온 후 가을 운동회를 했는데 운동회를

 하는 날은 온몸과 마음이 들뜨는 날이었다.

운동에 젬병인 내가 왜 이리 들떴나 하면 그날은 유일하게

바로 만든 솜사탕을 솜사탕 아저씨에게 사 먹을 수 있었다.

솜사탕 아저씨는 솜사탕 통을 자전거 뒷좌석에 올려놓고

 설탕과 무엇을 같이 넣고 풍금 페달 같은 페달을 발로 밟아

통을 돌리면 신기하게 설탕이 솜사탕이 되어

나무젓가락에 구름처럼 뭉게뭉게 달라붙었다.

내 얼굴보다 커지게 만들으면 드디어 맛나게 먹을 수 있었다.

이날 먹는 뽑기도 일품이었다. 단 한 번도 성공 못한 뽑기지만

먹을 때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청학리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 앞에는

 동학 슈퍼가 있었다. 동학 슈퍼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였다.

동학 슈퍼 옆에는 담배 가게가 있었다. 

나는 이담배 가게에 늘 심부름을 다녀왔다. 

작은 유리창 구멍은 담배 한보 루가

간신히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미닫이 유리로 만들어 그 구멍을

 들여다보며 담배 가게 아저씨에게 2천 원을 건네며

 청자 두 보루 주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청자 두 보루를 주셨다.

그러다 아버지는 솔이라는 담배로 바꾸시고부터는

솔을 주와 장창 사러 왔다 갔다. 지금도 생각나는

담배는 화랑, 거북선, 환희 등등도 생각이 난다.

어린 나이라 몸뚱이도 작아서 담배를 사러 오면

 왕복 한 시간은 기본이었다. 아버지가 심부름값을 100원씩

주셨는데 나는 백원을 들고 동학 슈퍼가 아닌 동네 구판장으로

가서 꽃다발 빵을 사 먹었다. 구판장은 담배 가게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서 있었으므로 들어가는 길이

귀찮기는 했으나 정가를 받는 동학 슈퍼보다는

 10원씩 할인해 주는 구판장으로 조금 더 걸어가는 수고를 감수했다.

그렇게 모인 10원이 50원이 되는 날은

방과 후 학교 앞 문방구에서 깐돌이나 불량식품을 사 먹을 수 있었다.

담배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찻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에는 이발소가 있었고

또 다른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삼거리에는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았다.

동학 슈퍼 앞에는 의정부로 가는 차가 15분에 한대씩 왔었지만

삼거리에는 서울에서 의정부로 나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대씩

지나갔고 하루에 네 번씩 군부대가 있는 용암리까지 들어가는

 1번 버스가 들어왔었다. 나는 이때 용암리를 무척이나 무서워했다.

화산과 용암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터라

혹 용암이 터지면 어쩌나... 한동안 무지 심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용이 바위 위에 앉아있었다 해서 용암 리나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3학년이 되는 해 삼거리 이발소 옆 배 과수원에

 막걸리 지점이 생겼다. 아버지는 천 원을 주시며 막걸리를

사 오라고 하시면 천 원을 들고 막걸리를 사러 간다.

막걸리는 천 원에 네 병을 주셨는데 이 막걸리는 쌀 막걸리가

아니라 밀가루 막걸리였다. 막걸리를 두 병씩 녹색 비닐봉지에

넣어주었는데 어찌나 무겁던지 3학년 짜리의 손에는 언제고

빨간 자국이 생겼다. 또 집에 오는 길은 어찌나 멀던지

중간에 쉬어쉬어 집에 오면 아버지께서는 하루에 두병을 마시셨다.

그러다 내게도 한 번씩 맛을 보여 주었는데 어찌나 쓰고

 신맛이 나는지 아버지가 왜 이것을 이리도 좋아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는 없었지만 언제고 돌아오는 100원의 심부름값이

그저 나를 행복하게 했다.

삼거리를 지나 냇가를 따라 들어오면 중간에 아카시아

나무들이 있고 아카시아 나무들을 끼고 논들이 있었다.

논들을 지나 다른 냇가를 만나고 다리를 지나야 본격적으로

 아랫마을이 시작되었다. 아랫마을을 표시라도 하는 듯

첫 집은 깡통집이었는데 우리들은 모두 다 생과부 집이라고 했다.

어린 날 생과부라는 말을 잘 몰라서 어른들이 말하는 대로

우리들도 생과부집 이라고 불렀으나 커서 보니 얼마나

잔인한 말을 어른들은 서슴없이 했나 모른다.

생과부 집을 뒤로하고부터는 밭이 나온다. 여러 가지 밭작물들을

 번갈아가며 심어놓는 밭 옆에는 밤나무들이 듬성듬성 있고

동네 안으로 들어오면 배밭이 온산을 뒤덮는다.

봄에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동네에 들어올 때 개나리

진달래가 온 동네를 노랗게 또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우리는

산으로 분홍 진달래를 따먹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진달래를 따먹다 따먹다 질릴 무렵부터는 아카시아가 피는데

아카시아꽃은 향기도 그만이고 한입에 털어 넣으면

그 맛 또한 일품이다. 아카시아꽃 먹기가 시들해질 무렵 우리는

아카시아 잎을 따서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기도 하고 동네 어귀

시냇물에 띄어 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나면 배꽃이 피기 시작한다.

배꽃은 온산에 피어 때아닌 눈밭이 된다.

눈밭을 구경하고 나면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배꽃을 날리는데

이때 날리우는 이화들은 과히 장관이라 할 수 있겠다.

흡사 눈이 날리는 것과 같이...

여름이 되면 배꽃은 온데간데없고 산과들은

푸르름에 흥겨워 한다. 산과들이 푸르러지면 동네 아이들은

모두 냇가에 가서 놀았다. 미꾸라지도 잡고 뚝지도 잡아서

추어탕을 끓여먹기도 하고 고동을 잡아다 삶아먹기도 했다.

또 과수원 한편에 있는 자두가 익어 어찌나 맛있던지

우리들은 자두를 너무 먹어 배탈이 나기도 했다.

실컷 놀고 나면 동네 초입에 있는 평상에 누워 시원하게

낮잠을 자기도 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동네 개울 옆에는 포도밭이 있었는데 학교에 갔다 오며

동네 아이들과 포도를 따먹고 있었다. 정신없이 따먹고 있는데

포도밭 주인이 우리를 보고는 인자한 목소리로

" 너무 많이 따먹지는 마라~"

그러시는 거다. 정신없이 따먹다 들킨 우리들은 속으로

 "어이쿠... 죽었다.. 우리 어떡하나.."

이러고 있다가 너무나 인자한 목소리에 우리는 놀라서

주인아저씨를 봤다. 이때 아저씨가 하시는 말..." 농약 뿌렸다..."

허걱.. 켁 캑캑... 우리는 이 말을 듣고 후다닥 포도밭에서

나와서 포도밭 앞 냇가에 우리들의 입을 마구 씻었다.

다 씻고 서로 얼굴들을 보니 우리들의 입은 모두 보랏빛으로 변해 있었다.

 좀 전의 농약 사건은 모두 잊고 우리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고

깔깔거리며 집으로 왔다. 그날 우리들 모두 배탈이 없었던걸

보면 농약 이야기는 아저씨가 지어낸 말인 거 같다.

어린아이들이 허겁지겁 먹고 있는 모습에 야단을 차마 칠 수

없어 그리 이야기하신 것 같다.

포도 뿐인가? 여름에는 감자가 제철이라 처먹고 튀겨먹고 것도 질리면

옥수수를 따기 시작한다. 그러면 집안에 가마솥을 밖으로 가져 나와

한솥씩 쪄 먹고는 부른 배를 살살 문지르며 대청마루에서

 잠이 들기가 일쑤이다.

가을이 되면 배가 익기 시작한다.

배가 익기 시작하면 학교 가는 길에 하나씩 따먹고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씩 따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오면 썩은 배가

한 다리씩 집에 있어 또 먹고 또 먹었다. 배뿐이랴...

수확의 계절인 만큼 고구마도 크고 먹음직하고 땅콩을 캐먹는 즐거움도

한몫을 한다. 이렇게 먹다 보면 동네 사방은 울긋불긋 단풍이

들어가고 이때부터 동네 아이들은 산으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떨어진 밤을 주워 온다. 책가방의 책들은 모두 던져놓고 방과 후

산으로 뛰어가서 한가득씩 주워와서는 처먹기도

하고 생으로 까먹기도 한다. 크고 좋은 놈들은 겨울에 아궁이에

구워 먹으려 남겨두기도 한다.

이렇게 또 가을이 지나가면 눈 내리는 겨울이 온다.

겨울이 되면 지난가을 남겨두었던 밤과 고구마를 아궁이에 구워 먹고

말려둔 검음 콩을 볶아먹기도 하고 이것도 질리면 김장김치

꺼내어다 밑동만 싹둑 잘라 길게 놓은 뒤 전을 부쳐먹기도 했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가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숯을 만들면 벌겋게 달아오른 숯들은 화로에 담겨 방안으로 들어왔다.

화로 위에는 주전자를 올려놔서 뜨거운 보리 차를 끓여 마시거나

 어쩌다 운 좋으면 엄마가 말려서 볶아놓은 옥수수로 차를 끓여

마시기도 했다. 추운 겨울 찻잔이라 할 것도 없이 밥그릇 국그릇에

따라 마시는 차 맛은 끝내주게 향기롭고 입안에 오랫동안 맛을 남겨 놓았다.

눈이 온산을 뒤덮으면 아이들과 꿩 잡으러 가자고 산으로

올라가서는 꿩 발자국만 찾다 이리저리 뒹굴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냇가에서 만나자고 하고는 집으로가

 썰매를 가지고 나와 썰매를 타고 놀았다. 썰매를 타다 팽이 치는 아이들과

함께 팽이도 처보고 겨울의 짧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는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집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사계절을 나는 스무 번을 보내고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 살다 다시 찾은 고향은 고향이 아니었다.

높이 들어선 아파트와 마트들... 배밭들은 온데간데없고

 버스는 동네 안쪽까지 들어오고 우리 집은 없어졌다.

내 아름다웠던 유년의 추억은 이제 내 머릿속에서만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