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보가 유효하지 않습니다.
보안을위해 재로그인해주십시오.

서울댁의 생각상자

(추억 상자) 가래떡 먹던 겨울 Mijin Kim (seoulajumma) 2020-11-13  23:24:38
설날이 되기 며칠 전부터 엄마는 큰 다라를 가지고 광으로 가셔서

커다란 쌀독에서 눈같이 하얀 흰쌀을 분홍색 플라스틱 바가지로

성큼성큼 퍼내어서 큰 자주색 다라에 담았다. 그 큰 다라를 들고

광 옆에 있는 우물로 가서 물 다라의 물을 한 바가지 뽐뿌에 넣고

(펌프를 어렸을 때 뽐뿌라 불렀다) 뽐뿌 손잡이를 위아래로 힘차게

빨리 움직이면 우물에 있던 물이 넘어왔다. 콸콸 쏟아지는 물을 조금

흘려버리고 나머지 물을 다라에 담아 쌀을 불렸다.



이렇게 불린 쌀은 소쿠리에 옮겨져서 물을 뺐는데 그때

빠져나가는 물은 마치 댐에서 물을 방류하듯이 쏴~ 하며 흘러 나갔다.

불린 쌀을 소쿠리채 다라에 담고 엄마와 나는 함께 다라를 들고

바깥마당에 있는 리어카까지 들고 가서 리어카에 싣고 청학리

1번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청학리에는 방앗간이 없었기에 의정부까지 나가서 떡을 만들어 왔는데

금방 뽑은 떡을 맛보기 위해 나는 혼자 리어카를 끌고 가시는 엄마를

도와준다고 하면서 따라갔다가, 엄마가 버스에 타시는 순간

버스 요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나는 훌쩍 올라탔다.

사람들이 많아서 엄마는 막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흘겨보는 눈으로

한번 째려보시고는 씩 웃으셨다.

아무래도 혼자 가시는 것보다는 동행자가 있는 편이 엄마에게도

덜 심심하셨을 것이라는 것은 온전히 내 착각일 뿐이고~

의정부까지 가시는 내내 피곤하신 엄마는 잠에 빠져 있었고,

가는 내내 나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오랜만에 응달마을을 벗어나

새로운 것들을 실컷 볼 수 있는 눈요기에 맘껏 취해있었다.



시장 앞에서 안내 양언니가 "시장 앞~ 여기는 시장아~~아프!!!"

그러면 나는 엄마를 흔들어 깨울 요량으로 엄마의 어깨를 잡으면

곤한 잠에 빠져 고개를 좌우 앞뒤로 흔드시던 엄마가 두 눈을 번쩍

뜨시고 입가에 흐르는 침을 한 손으로 쓰윽 닦으시곤

나를 보며 마치 당신은 잠을 안 잔 것처럼 "내리자~" 이러신다.

쌀 다라를 들고 시장통 방앗간까지 가면 떡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방앗간 아줌마는 멀리서 온 엄마가

조금 후 가셔야 하는 것을 아시기에 다른 아줌마들 것보다 빨리해주신다.

떡이 되기까지 엄마와 나는 시장통에 있는 엄마의 육촌 언니네

옷 가게에도 들려서 그동안의 안부도 묻고, 설탕과 프리마를 잔뜩 넣은

인스턴트커피도 한잔 얻어마시고 잠시 수다를 떤 후 또 다른

친척이 하는 신발가게에 들르신다.

엄마의 육촌 언니는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말 그대로 옷 가게였지만,

신발가게는 그야말로 시장통에 있는 노점이었다.

추운 날씨에 깡통을 개조해 만든 난방 의자는 친척 아줌마의

유일한 난방용품이었다. 그 의자는 해표 식용유 말깡통인데

뚜껑 부분을 잘라내고 그 안에 연탄보일러를 넣어놓고 연탄을

두 개 넣고는 그 위에 뚜껑을 덮고 방석을 깔아 따듯하게 만든 것이다.

연탄가스가 나가는 작은 연통도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 깡통 의자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한번 앉아보라고 하신다.

호기심 많은 나는 한 번의 주저함 없이 털썩 앉아보고 좋아했다.

엄마와 엄마의 먼 친척인 아줌마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동안

나는 신발들도 구경하고, 50원짜리 땅콩 호떡도 사 먹었다.

돌아갈 무렵 아줌마는 나보고 신으라고 월드컵 운동화도 한 켤레

검은 시장 봉투에 넣어주셨다. 엄마는 미안해하시면서도 수줍게

받아서 나에게 들려주셨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고맙습니다"

라고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가래떡을 찾으러 가기 전에 엄마는 가축약품 집에 들러 소들에게 놀

주사약과 먹일 약들을 여러 개 사셨다. 주인인 수의사 아저씨는

설날이라고 가축약품 로고가 찍힌 남색 손가방도 하나 주셨다.

엄마는 "애이~ 하나 더 줘~ 달력도 하다 더 주구~" 난생처음 본

엄마의 닭살 돋는 멘트에 기겁을 하고 바라보니 엄마는 뻘쭘해 하신다.

애교가 통했는지 가축약품 수의사 아저씨는 허허 웃으시며

달력과 손가방을 하나씩 더 주셨다.



이렇게 시장통을 돌아보고 떡을 찾으러 가니 다 되었다고 했다.

아까 가져갔던 불은 쌀의 두 배는 더 되어 보이는 떡이 한 다라 가득하다.

방앗간 아줌마는 재빠르게 떡 한 줄을 뜯어서는 나와 엄마에게 먹어보라고

주었다. 엄마와 나는 맛있게 떡을 먹고 나서, 엄마의 머리 위에 볒집으로

만든 동그란 똬리를 올려놓고 떡 다라를 방앗간 집 아주머니와 함께

들어서 엄마의 머리 위에 올려주었다.

버스 정류장까지 와서는 엄마가 살살 바닥으로 무릎을 꿇고 앉으시고

나와 함께 살살 다라를 내려놓았다. 1번 버스가 오기 전에 엄마는

정류장 앞 토큰 부스에 가셔서 토큰과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들이 쓸

회수권을 여러 개 사셨다. 토큰은 마치 조선시대의 상평통보나

엽전처럼 가운데 구멍이 나있었고 동색이었다. 그러다 어느 때는

은색으로 바뀌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요금이 오를 때마다

색깔을 동색과 은색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또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 때는 갈 때와 마찬가지로 재빠르게

잠이 들어버린 엄마를 옆에 두고 나는 창밖 풍경 보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청학리 종점까지 와서 버스가 턴을 하면 엄마는 번쩍 눈은 뜨고

일어나셨다. 아직까지 따끈따끈한 떡 다라를 버스에서 내려,

아까 나올 때 가져갔던 리어카에 실었다. 내가 들고 있던 월드컵

운동화 봉지와 소약과 소약국에서 받아온 달력들과 손가방도

리어카에 실었다. 종점 앞 담배 가게에 들러 작은 미닫이 창문 틈으로

엄마는 청자 두 보루를 사셨다. 엄마는 리어카를 끌고 나는 리어카를

밀며 집으로 오는데, 엄마는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를 맛깔나게 부르셨다.



집에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언니들은 모두 나와 따근한 가래떡을

한두 개씩 쭉쭉 뜯어 하얀 백설탕에 찍어 먹고, 나머지는 물에다

담가 놨다. 물론 아버지 것을 잊지는 않았다.



물에 담갔다 뺀 가래떡을 안방으로 가져와서 딱딱해지기 전

그러나 말랑한 기가 빠지고 나서부터 썰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마치 한석봉의 엄마인 양 예쁘게 잘 썰으셨으나 언니들은

삐뚤빼뚤 썰었다. 엄마는 어쨌든 썰어놓은 떡들은 예쁘나 미우나 먹기는

매한가지라 하시며 언니들과 가래떡들을 다 썰어놓았다.



이렇게 썰어놓은 가래떡들은 설날을 전후로 해서 주와 장창 떡국으로

끓여졌고 떡국이 질릴 무렵에는 남아있는 딱딱한 가래떡들을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구워 먹었다. 연탄불 위에 올려놓고 잠시 잊어버리면

펑!!! 소리를 내며 터지는데 모두들 깜짝 놀라 쳐다보고는 사방팔방

튀어버린 떡 파편들을 보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이것들도 시들해질 무렵에는 어김없이 뻥튀기 아저씨가 뻥 통을

가지고, "뻥~뻥~튀기 튀기" 하시며 동네로 들어오신다.

여름부터 말려놓은 처마 밑 옥수수는 물론이고, 광에 있는 쌀독의

흰쌀과 보리쌀, 그리고 기대하고 고대하시라~ 바로바로 마르고 마른

가래떡!!! 동네 어귀 과수원 집 바깥마당에서 뻥튀기 아저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뻥을 튀겼다.



뻥 통어 옥수수나 쌀보리 또는 떡을 넣고 하얀 가루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가성소다가 아닌가 생각해본다)를 넣고

뻥 통을 돌리는데, 한참 동안 쭈구리고 앉아서 뻥 통을 돌리다

뻥 통어 달려있는 조그만 시계 같은 무슨 기압계 같은 것을

흘끔 보고는 우리들을 쳐다보고 "뻥한다~ 귀 막아라!!!"

소리치곤 곧바로 "뻥이요!!!" 를 외치면 넋을 놓고 구경하던

우리들이 모두 귀를 막고 쳐다본다. 순간 대포 소리 같은 뻥!!!

소리가 나면서 불이 난 듯 하얀 연기가 솟아오르고 뻥튀기기 전

매달아놓은 망사 같은 긴 통에 뻥튀기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뻥 아저씨는 망사에서 따끈따끈한 뻥튀기를 우리들이 가져온

다라나 커다란 자루에 쏟아주신다.



집으로 가져온 뻥튀기들은 맛있는 겨울 간 식이 되어 그냥 바가지에 담아

주워 먹거나, 엄마가 시간이 나시면 조청을 만들어 버무려 주면 맛난

강정이 된다. 가끔은 콩도 튀겨서 강정을 해주셨는데 콩은 튀겨놔도

딱딱해서 인기가 없었다. 오히려 볶은 콩은 껍질을 벗겨먹는

재미라도 있는데 딱딱한 콩강정은 영 맛이 없었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커다란 가래떡 뻥튀기였다.

지금도 가끔 한국 시장에서 사 먹는데 그때 그 맛은 아니더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임에는 틀림없다.



설날이 지난 이 시점에 내 유년의 겨울 간 식이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흔한 떡국조차 생각을 해서

끓여 먹어야 하니 타향에 사는 나는 고국이 더욱 그리운 오늘이다.
Back 목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