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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댁의 생각상자

(추억상자) 당근이 쥐~~ Mijin Kim (seoulajumma) 2021-1-27  13:30:23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 부터 였던것 같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시다 말고 물을 급하게 찾으시는 것이다.

마치 지금 숨이 넘어갈 듯이....



그해 여름부터 갑자기 시작된 아버지의 갈증은 식사시간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물 한 바가지를 밥상 옆에 가져다 놓고

밥 한 숟갈 드시면 물 한 모금 마시며 음식물을 삼켰다.



엄마는 이상하다며 병원에 가기를 권유했지만, 먹을 때를 제외하곤

별다른 이상 증세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가고 넘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던 때....

아버지는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의사들은 신경성이다... 원인 불명이라는

말만 반복할 뿐 그냥저냥 시간이 흘러갔다.



그해 여름, 엄마는 아버지를 의정부에 있는 작은 의원에 데리고 가셨다.

강력하게 아버지의 엑스레이 기계에 목을 바짝 대고 찍을 것을 주장하셨다.

이유 없이 밥을 못 먹게 되진 않았을 것 아니냐며 의사를 다그쳤다.

이때 아버지는 진밥조차 목구멍으로 넘기기 어려워서

죽을 드시고 있었다.



의원의 의사는 엑스레이에 나타난 걸 보면 아버지의 식도에 암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 어서 원자력 병원에 데리고 가보라고 권유를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원자력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한 결과,

식도암 말기라고 했다. 의사는 아버지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수술을 하더라도 6개월을 더 사시기 힘들 거라고 했다.

몸 상태도 수술을 하기에는 기력이 너무 떨어졌다며

그냥 집에 가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을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절대 수술을 하실 거라고 주장을 하셨다.



매일매일 한 갑씩 피우던 담배도 끊은지 오래다.

소주와 막걸리도 끊어버리고 이제 목캔디를 담배 대용으로

시원한 물을 술 대신으로 삼아 암을 이기실 거라 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하라고 하시고는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지가 없는 집은 말 그대로 휑~ 했다.

농담을 좋아하고, 말씀을 하실 땐 특유의 몸짓을 겸하시는 모습이

마치 탤런트 오지명 아저씨 같았다. 얼굴도 비슷하고 목소리도

비슷해서 나중에 티브이에서 순풍산부인과를 볼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났었다.



겨울방학 끝 무렵에 아버지는 수술을 하셨다.

무료로 수혈을 받기 위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큰언니가

친구들을 불러다 다 같이 헌혈을 했다. 그렇게 헌혈카드를

모아 아버지 수술할 때 쓰라고 엄마의 손에 쥐여주는

언니의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었다.



아버지의 수술은 무사히 끝이 났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을 했고, 6인용 병실로 옮겨진

아버지는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엄마는 소들을 돌봐야 해서 집으로 가셨고, 중학교 3학년짜리

졸업반인 나는 아버지를 돌보라고 해서 병실에 남겨져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다른 언니들보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



아버지의 침대 옆, 작은 간이침대에 몸을 눕히고 아버지의

소변량을 시간마다 체크해서 침대 발끝에 걸려있는 차트에 적어

놓아야 했다. 3년 전 동생이 수술을 했을 때는 전화기에 알람을

정해서 자다 일어나서 체크하기가 편했었는데, 그 당시엔

셀러폰이란 것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때라 그냥 생으로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어나야 했다.



방학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는

충청도에서 큰아버지가 올라오셨다.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퇴원을 하기도 전에 엄마와 말다툼을

하고 화가 나서 충청도로 내려가셨다. 말다툼을 한 이유는

평소 술을 좋아하시는 큰아버지가 동생의 간병을 자처하고 올라왔지만

술을 끊으신 아버지 앞에서 반주를 하시다 엄마에게 들키셨단다...ㅠㅠ



아버지는 초봄에 퇴원을 하셨다.

퇴원을 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혼자서 모든 집안일을 하는

엄마를 도와 마른 몸으로 소 꼴도 주고, 집안일도 도와주었다.

그러다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하더니 늦여름이 되었다.



아버지는 집에 오신 후 밭일도 간간이 하셨다.

김장용 배추도 심고, 무도 심고 또 단무지를 할 기다란 외무도

심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총각무도 한고랑 심으셨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배추밭 옆으로 땅을 갈아놓고는

의정부 시장에 있는 씨앗상에 가서 씨앗 한 봉지를 사 오셨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불러 지금부터 심는 씨앗은 당근이라고

말씀하셨다. 씨앗을 손에 털어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보기에는 그냥 무나 배추씨 같았다. 조금 작아 보이기도 하고

더 동그래 보이기도 했으나 아버지가 보여주시니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구나.. 이게 당근씨구나...

이러며 아버지에게 반응을 했다.



아버지는 당근씨를 흩뿌려놓고 우리들에게 물을 살살 뿌려주라고

하시고는 피곤하다며 집으로 들어가셨다.

우리들은 배추밭 옆에 당근밭이 있다는 걸 알아두었다.



당근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아버지는 시간만 되면 밭으로 내려가서 당근 새싹들을

바라보며 좋아하셨다. 그리곤 우리들을 불러 당근에는 베타카로틴

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항암효과가 있어서 이것이 다 자라면

매일 먹어 암을 치료할 것이라고 장담하셨다.



당근은 배추보다 더디게 자랐다.

배추는 벌써 김장을 해도 될 정도로 자라나서 지푸라기로 묶어둔지

한참인데 당근은 아주 작아 녹색 이파리만 보일뿐이었다.



그해 9월 3일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엄마는 김장을 하셨다.

동네 아줌마들이 와서 예전과 같이 배추 200포기의 김치를

담그고, 우물 옆 상나무 아래 독을 여러 개 묻어 김치를 저장해

두었다. 그리고 또 내 키보다 조금 작은 큰 통을 묻어 거기에는

기다란 외무로 노란 다꽝을 담아두었다. 뚱뚱한 조선무로는

동치미도 담가놓고 여느 때처럼 달랑 무라고 하는 총각무로

김치를 만들어 작은 항아리에 담아서 부엌 옆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엄마는 우리들 보고 더 추워지기 전에 김장이 끝났으니

앞밭에 가서 배추 뿌리를 덮고 있던 비닐들을 다 걷어내라 하셨다.

비닐을 다 걷어내고 한곳에 모아 동네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고

돌아와보니 밭에 남은 초록색 당근 잎들이 제법 자라있었다.



엄마에게 당근은 어쩔 거냐고 물어보니 얼마나 자랐나 한번

케어 보라고 하신다. 밭으로 가서 당근을 쑥 뽑아보니 제법

큰 당근이었으나 가늘고 길었다.

집으로 가져가서 엄마에게 보여주니

엄마는 "야!! 차라리 이참에 다 뽑아서 먹어버리자.

우리라도 다 먹어버려야 늬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지?"



그해 우리들은 당근을 무지 많이 먹었다.

아버지가 심어놓고 정작 당신은 한 개도 못 드셔본 당근....

그 당근을 먹으면 항암효과가 높아 오래 사실 거라 큰소리

치시며 웃으시던 아버지.



요즘처럼 마트에 가면 지천인 굵고 큰 당근들을 볼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난다. 며칠 전 당근을 잘라 오븐에 구워 먹었는데

참 맛났었다. 유난히 당근을 좋아하는 막내가 물었다.

"엄마 당근은 건강식품이지? 몸에 좋은 거지?"

이렇게 물어보는 막내를 보고 나는 대답했다.

"당근이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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