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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청국장 냄새 yeon seo (yeonseo) 2021-6-14  22:58:27
나는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할머니 방에서 살았다.
4대가 같이 살던 우리 집은 방이 5개였는데 할머니+ 나와 내 여동생 방, 아버지+어머니방, 오빠방, 2명의 삼촌 방, 고모부부 방.
오빠는 장손이라는 특혜를 받아 작은 방이었지만 혼자 썼고 나는 할머니방에서 내 여동생과 같이 살았다.
다른 방들과 달리 우리 방은 온돌도 되지만 나무를 때는 방이었기에 가끔 방에 불을 때면 정말 숨이 막히도록 더운 때가 있었다.
방바닥이 탈 지경으로 온도가 높게 올라가지만 이내 식어버리는, 겨울이 되면 늘 이불을 방바닥에 깔아 온도 유지를 했다. 
아버지와 삼촌들의 솜씨로 만들어진 책상이 있어서 늘 의자에 앉아 공부를 했던지라 다행히 방바닥의 뜨거움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지만 그 탈 듯한 바닥에 얇은 담요를 하나 깔고 이불을 덮고 누워 계시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진심으로 이해를 못했던 적도 있었다.
교복을 입던 세대고 동복은 거의 자주 빨지를 못하다 보니 교복은 집안의 온갖 냄새의 역사의 장이 되곤했다.
학교 갔다오면 교복을 구겨지지 않도록 옷걸이에 걸어 놓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입고 학교 등교를 했었다.
다른 방은 모두 연탄을 넣는 온돌이라 엄마는 할머니 방이며 나의 방에 늘 청국장을 띄우곤 했다. 
아니 거의 겨울내내 그랬다.
콩을 삶아서 커다란 시루에 넣어서 따뜻한 방 이불 속에 며칠을 두면 냄새가 점차 골수(?)를 깨기 시작하고 거의 음식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쯤이면 짜증이 올라오던 때. 그게 바로 청국장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온통 방에 청국장 냄새로 진동을 하다보니 환기도 잘 안하는 겨울인지라 모든 냄새가 벽에 걸린 옷에 배게된다.
코란 놈은 처음엔 예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냄새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빨라 나의 냄새를 맡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밤새 걸어놓았던 교복을 아침에 입고 등교하면 말은 하지 않지만 친구들의 표정으로 냄새를 읽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냄새를 잡는 스프레이가 있다면 얼마나 사는 것이 윤택했을까.

난 냄새에 예민한 편이다. 
사람마다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함께 이야길 하다보면 냄새로 좋고 나쁨이 가려질 때가 있다.
냄새가 좋으면 인상이 좋아지는 그런거 말이다.
가정이 부유하고 가족관계가 좋은 집은 뭐라 표현을 못하겠지만 좋은 냄새가 난다. 내가 나만의 냄새로 알아내는 방법이 있었다.
여학생 교복에서 향수 냄새는 안나더라도 최소한 꾸리꾸리한 청국장 냄새는 나지 말아야했었는데 그땐 나도 냄새가 별로 달갑지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달리 바꿀 방법이 없었다. 
겨울만 되면 화장실과 별 다르지 않은 냄새를 풍겼던 나였으리라 생각하면 지금도 은근히 부화가 난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청국장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반전이 있었다. 
겨울 김장 김치와 청국장의 조화는 "입맛이 없어 먹기 싫다" 라는 말을 모르고 살아온 나에게 체중을 늘리는 촉매가 되었고 그때의 단련된 입맛은 냄새를 극복하는 신기한 마력이 있었다.

겨울방학 2박 3일을 시골의 어느 대학에 컨퍼런스를 갔는데 첫날나온 호화로운 샐러드와 햄, 푸짐한 미국 음식에 즐거워 했다가 3끼가 지나면서 가슴이 답답해 오고 소화가 안되는 알수없는 증세에 고생을 했었다. 
그럴 때 신 김치 넣고 끓인 청국장을 그리워 한적이 있었다.
모든 일이 빛과 그림자가 있듯 청국장도 나에겐 빛과 그림자가 있는 음식 중에 하나다.
아랫목에서 진뜩하게 익어가던 청국장. 
유리창 넘어 마당 구석에 단감이 외롭게 추위를 이겨내며 대롱대던 그 시절이 청국장 냄새만큼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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