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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20년을 지나면서 yeon seo (yeonseo) 2021-8-10  08:26:45
공항에서 가방 검사를 해야한다고 한다.
 오랜 시간 비행기에서 부석부석한 아이 셋을 데리고 손을 사용할 수 없을만큼 많은 물건이 의심스러워 보이는지 사무실로 오라는 손짓을 해서 물건을 끌고 사무실로 대부대가 들어섰다.
한국에서 미국에 이주한다는 이유로 가족들이 챙겨준 물건들을 꾸겨넣다보니 당연 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눈만 돌리면 사방으로 튀는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입으로 발로 통제를 하는 절박한 상황인지라 모습이 참으로 구겨놓은 걸레 같았으리라.
더군다나 미국에 사는 동서에게 주려고 산 그 놈은 냄새가 가관인지라 아무리 싸도 코끝을 맴도는 상황이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어디를 왜 가냐? 
통역관이 필요하냐?

고 묻는다.
가족방문이라 하고 통역관이 필요하다고 더듬더듬 이야길 하니 내 말투를 듣고 당연 통역관이 필요하다는 얼굴의 표시가 확 올라온다.
나이든 여자 한분이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오고 인상이 비교적 좋지않아 마음을 다잡고 준비를 했다.

어디서 오신거예요?
물건을 열어 보세요.

아이들이 낯설은 사람을 바라보는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더니 아주 빠르게 사무적으로 묻는다. 
대충 대답을 하니 통역을 한다.
가방을 열어보라는 말에 

사실은 오징어가 있는데 이거 냄새가 좀 날 듯합니다.
상관없어요...한국 사람들은 왜 오징어를 좋아하나 몰라..

듣자마자 다시 그녀의 얼굴을 봤다. 분명 한국사람이고 한국어로 이야길 하고 있다. 잠시 혼란이 왔다.
미국인이 한국말을 하나??

그 당시에 한국에서 유행하던 음식 중에 하나가 반건조 오징어이다.
갖은 방법으로 반정도만 말려 입안에서 부드럽게 흡수되도록 조미된 오징어의 그 맛을 잊지 못해 다들 비싼 가격으로 먹었고 주변의 귀한 분들에게 선물도 하곤했다. 
오랫만에 만나고 언제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신세를 져야하는 나의 상황이다보니 좀 비싼 오징어를 동서에게 주려고 준비를 했다.
완전건조한 오징어는 이와 턱을 많이 고생시킨다고 했지만 어릴 적부터 먹던 그 짭잘 꼬리한 맛을 못잊어 땅콩과 같이 항상 우리 집에는 있었다. 
그런 때에 반건조 오징어의 맛과 질감은 나를, 우리를 매료시키기에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오징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냄새의 문제가 좀 있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던지라 마음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통역관이라고 온 사람마저 저런 말을 하니 미국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싶어 "제발"을 마음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다.

페퍼 파우더? 
예스
김치?
코리안 프로덕트?

우리의 대화가 이어지고 마침내 랩과 비닐에 쌓인 그것을 보더니

왓이즈 잇?
카인드 오브 드라이드 피쉬...ㅠㅠ
오픈 잇.

둘둘 말린 비닐 랩이 열려가면서 그는 손수건으로 시작한 코막기는 결국은 머리를 돌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시 싸라고 한다.
아들 놈이 그의 표정을 보더니 웃겨죽는다고 킥킥거린다.
결국은 풀렀다 다시 싸면서 1시간을 소요한 후에 사무실을 빠져나와 밖에서 기다리던 동서를 애타게 만들었던 해프닝은 끝이 났다.

그렇게 이민 생활을 시작한 것이 벌써 20년을 넘긴다. 
그 해 여름엔 비도 많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말갛게 씻긴 차를 보면서 미국에 와서 세차를 안해도 된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더군다나 동부의 날씨는 하염없이 좋아서 여름에 90도가 넘으면 버스비를 받지 않는다는 말들도 들었다.
요즘 같으면 버스 매일 공짜로 탈 수 있을텐데.. 그 때, 지금보다 젊었던 그 시간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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