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를 치룬 후에 고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둔 겨울에 교회에서 나와 같은 대학을 다니던 오빠를 잠시 마음에 둔 적(남녀의 감정이 아니라 존경의 감정)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에 우리 고등부 예배가 있었는데 우리를 리드하던 교사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룹으로 나눠 성경공부가 끝나면 일부는 귀가하고 이제 입시의 결과만 앞둔 우리같은 한량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아쉬워 함께 동네 문방구 옆에 떡볶이 집으로 향하곤 했다. 

한번은 이 오빠가 우리 작은 떡볶이 모임에 함께 하면서 "흑백논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당시엔 마치 소문으로 그랬대..하면서 듣던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소름 돋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정치라는 색을 조금씩 배워가게 된 듯하다.

데모를 많이 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대학에 입학을 하면서 나의 온 몸에서 끓어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정말 많은 시간을 그..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내 기억에 대학에 들어가 시험이라는 것은 1학년 때 본 것이 전부인 듯하다.

시험철인 4,5월엔 기왓장을 깨고 숨을 쉴 수없는 최루탄을 맡으면서 살았으니 말이다. 

돌아보면 우리나라 대학생활에 나의 학창 시절, 80년대 초반이 가장 많은 데모를 한 듯하다. 그렇게 지나 온 우리 모교도 지금은 연예인을 불러 대학 축제를 한다고 하니 말이다.

다른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 않은데 데모를 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함께 우리의 사고를 나누고 새로운 결의를 하고 실행을 할 때는 반드시 변절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기의 이익을 따지고 그것을 마치 진리인 양 합리화하는 수려한 말솜씨. 난 그걸 정말 견디기 힘들어했다. 

난 말에 대한 지능이 많이 낮은 사람이다. 

내 생각을 화려하게 미화할 능력도 없고 하나님이 주신 그저 가장 기본에 충실한 발화정도의 수준인지라 그들을 반박할 능력이 부족하였다. 

나의 기준으로 그것은 "참"이 아닌데 대중의 힘은 그 아름다운 순수함을 뭉게 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나이가 들 듯 점차 배신이라는 말로 표현되었던 그 날의 그들 행태가 불현 듯 생각이 나는 오늘이다.

내 주변에 자기 위주의 사고, 단체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고 공익보다는 내 시간에 저촉이 되면 안하는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다. 

우린 늘 마주쳐야하고 그럴때마다 탁월한 말솜씨로 대중을 속였던 사람. 슬쩍 슬쩍 거짓말도 하고 사기를 치지만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앞에서는 한없이 선량한 ...그런 사람을 오랫동안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지 않게 표현을 하게 되고 그 사람의 성장앞에서 어느 순간에는 나만 늘 속상하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대중은 그런 부정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똑바름"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눈치껏 사기치고 걸리지 않으면 된다고, 상황판단을 잘 하여 그에 맞게 "참"보다는 분위기에 맞게 행동하라고 가르쳐야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을 돌아보면 "참"을 무시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쓰던 사람들이 이기고 잘 사는 현실을 보았는데 아직도 그런 모든 일들이 많이 생소한 난 아직 여물지 못한, 분위기 파악이 안되는 꼰대인가 보다.

그저 이민의 땅 ,미국에서 다시 느끼는 이 씁쓸한 기분은 나에게는 아마도 죽어야 없어질 감정은 아닐까. 그냥 잠이 안오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