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서울, 내 고향의 지금 명칭이 홍대입구지만 내가 어릴적엔 70년대 부자들이 살던 마치 강남과 같은 곳이었다.

지금은 강남이 화려하지만 내가 자랄 때는 강북에 모든 문화가 집중 되었던 시기였기에 서교동은 그나마 괜찮은 동네로 알려져 있었다. 옆 동네 연희동은 당시에 정치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집은 그들과는 색이 좀 다른 삶이었기에 여러가지 상대적인 빈곤감도 있기도 했다. 복닥거리면서 한 집에 4대가 같이 살던 그 때에 우리의 놀이터는 서교동 기찻길과 한강이 주 무대였고 절두산 성지를 방문하는 여정도 종종 있었다. 가족 구성원에 비슷한 나이대가 거지떼들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놀던 시절이었고 고등학교(홍익여고 졸업)때부터 조신한 여자, 사실 놀 시간도 별로 없었고 친구도 없어서 함께 삼촌들과 고모들과 놀았던 기억은 없다.

하지만 삼촌과 오빠에게 죽어라 구박을 받으면서 따라다니며 놀았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시골 깡촌에서 자란 줄 안다.

한강에 지렁이와 송사리 잡으러 가고 기찻길 옆 풀숲에서 개구리 잡아 구워먹던 때도 있던 곳이 지금의 홍대 입구다.

우리집도 동네 집들도 그 때의 흔적은 없어지고 고스란히 바쁘고 복잡한 동네가 되었고 미국에 살다가 오랫만에 방문했던 친정동네는 엄청 낯설은 동네로 변해 내 추억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홍대입구가 형성되고...사실 고등학교때는 홍익대학을 가장 우습게 알았던것도 사실이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가는 후진 대학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때였으니 말이다.

담임 선생님도 공부 안하면 이 동네 못 떠난다고 좀 겁박도 했었던 고 3 시절도 기억이 난다.

대학 원서를 접수하러 나가면서 버스비를 달라고 하니 울 엄마가 가까운데 좋은 대학 많은데 왜 멀리 가려고 하냐고 인상을 찌뿌리기도 했던 때도 있었다.

서강대 호박밭 사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지인중에 서강대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가던 중에 70년대 후반 80년대 초, 서울에서도 호박밭을 가꾸던지라 인분을 잔뜩 뿌려 놓고 조그마한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호박 싹을 틔우던 때가 있었다. 그 때가 1월과 2월 사이였는데 얼어 미끄러운 밭뚝을 걷다가 미끄러져 아래 굴렀는데 그곳이 마침 인분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면접을 해 보지도 못하고 서강대를 멀리하고 결국 재수를 해서 서울대를 간 사람도 있었다.

강가에 놀러가면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개를 잡아서 술을 마시고 놀던 것도 보았고 자살하려고 강에 뛰어든 시체를 건져서 강둑에 눕혀 놓았던 모습을 보고 몇날을 잠을 설치며 무서움에 떨었던 기억도 있다.

절두산 성당에 들어가 그 장소의 역사를 보고 처형당한 사진과 그들이 입고 가졌던 소품들을 본 후에 입구의 터널을 혼자 못 걸어나와  울었던 기억도 난다. 

언젠가 부터 강가를 개발한다고 강 기슭이 없어지고 온통 콘크리트로 주변을 바꾸어 놓아 어린 시절 강가에서 송사리 잡던 일을 상상도 못하게 되었지만 대학을 들어가서는 교회 오빠들과 데이트 장소로 종종 이용하곤 했다.

제2 한강교 밑에서 바라 본 석양은 눈물이 쏟아지도록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영등포인데 기억에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영등포를 엄청 싫어했던거 같다. 그 곳은 타지인들이 많고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못가게 해서 다리 건너를 상상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서교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배웠고 넘어져 울었던 기억을 뒤로하고 자전거를 타고 강변도로를 따라 여의도 공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놀던 시절도 생각난다. 지금은 공원이 조성된 여의도 광장은 주말에는 자전거 족들의 쉼터가 되곤 했었다.

윤중로를 따라 피기 시작했던 벚꽃들이 이젠 벚꽃 문화의 한 장소가 되었지만 내 어릴 적엔 그저 강가의 벚나무들이 있는 정도로 기억이 된다. 그렇게 태어나서 자라고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 곳. 이젠 아파트와 젊은이들의 문화 폭발의 장소로 변했지만 거리마다 뿌려진 내 젊은 날의 추억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오래 전 한국 방문해서 늦은 아침을 먹으려고 친정 엄마와 메뉴를 걱정하면서 주섬거리며 일어나는데 80세가 넘은 울엄마..

홍대입구엔 없는게 없다. 싸고 맛 있는 곳 내가 알지.

노인네가 젊은이보다 낫네.ㅎㅎ

그렇게 상가 중심에 점심하는 곳에 가니 평일이라 가격도 1/3이고 맛도 좋고..

비록 옷 사러 상가에 들어가면 점원들이 깜짝 놀라는 나이지만 그래도 평생을 산 그곳에서 아직도 울 친정은 살고 있고 서울 토박이인 나는 시골 촌닭같은 삶을 살면서 자란, 비가 오면 땅이 질어서 양말을 두개 가지고 등교하고 진흙땅에 널부러진 지렁이를 무서워 해 장화를 신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요즘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내가 자란 동네는 여전히 활기있고 살아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