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야말로 나 혼자 "어른"이라고 느낄 때였으나 성장하지 못한 정신 상태로 준비없이 사회라는 사막으로 뛰어들었다. 

좀체로 고집이 세서 울지 않았던 나도 어렵게 연명하던 대학 등록금을 못내서 달을 쳐다보고 울었다.

그 때 내 동생은 6학년이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어떨지 조금은 궁금도 했고 모처럼 한국에서 전화가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길 하다가 아버지 이야기가 나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물었더니,

" 아버지에 대한 많은 기억이 없어. 단지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오셔서 잠시 기운이 나서 이야기가 가능하실 때가 기억나지."

" 어떤 일이 있었는데?"

"아무 말씀은 안하시고 나를 쳐다보시다가 외투 여기 저기 뒤지더니 5000원을 나에게 주시더라구. 

아버지가 줄게 이것밖에 없다고 하시면서...그게 아버지와 마지막이었어."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동생은 울음을 터뜨리고 나도 함께 울었다. 

우리의 아버지는 이제 막 애기에서 어린이로 접어드는 막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나도 늘 동생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인데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아버지 연배의 어르신들이 아직도 살아계신데 우리의 기둥은 55세라는 청년의 연세에 어린 자녀들을 두고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그 분이 오신 곳으로 돌아가셨다.

우린 아버지의 빈자리를 생각할 겨를없이 정말 바쁘고 힘들게 살아왔고 살아냈다. 

이제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마치고 돌아가시던 나이보다 우리는 더 많은 나이를 먹었고 이제서야 여유롭게 아버지를 기억하는 불효자식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

주판을 튕기는 큰 딸을 대견해 하시면서 머리 쓰다듬던 시간을 기억하시죠?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하니 손수 칠판을 만들고 분필을 구해 주면서 산수문제도 칠판에 연습하라고 하시던 말씀 기억하시죠?

그렇게 살다가 아버지 뵈러 갈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듯합니다. 

다시 만나면 잘 살고 수고했다고 칭찬해 주세요.

아버지 안 계신 그 날이후로 천방지축이었던 우리들이 철도 들고 남의 어려운 일들도 함께 느낄 줄 아는 조금은 성장한 사람들이 되었답니다. 하루하루를 살면서 언제나 감사하고 모자람이 없도록 노력하는 사람들로 살다가 아버지를 뵐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