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일정이라 만날 사람은 많은데 차도 없고 지하철로 움직이다 보니 나가서 돌아다니는게 보다 힘들어진게 몇년전 방문할 때와 다른 점이다. 동생이 인천에 살아서( 인천공항과 가까워) 내 짐을 동생 집에 풀고 나의 나와바리였던 서울의 홍대입구를 오가자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날씨는 인간의 체온보다 높고 미국에서 가져온 옷들은 최소한의 무게가 2배이상은 나가는지라 몸이 지탱하는 한계가 반나절을 못버티었다. 다른 일정은 모두 소화하지 못해도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서 환갑잔치는 꼭 해야하는지라 최우선의 스케쥴로 잡았다. 다들 어릴 적 캠프 생각을 떠올려 청량리 역에서 아침에 만나 경기도 부근의 좋은 곳으로 가기로 결정을 하고 동생네 집에서 6시30분에 지하철을 탔다. 거의 2시간을 지하철에서 자다깨다를 반복하여 도착한 청량리 역.

어릴 적에 왔던 그 장소는 어디가고 롯데 백화점이 청량리 역을 점령하고 있었다. 배낭과 텐트를 베개 삼아 누웠던 그 넒은 광장은 어디로 가고 빼곡한 인파만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롯데 백화점에 들어가고자 정문을 찾으니 열리질 않는다.

휴일인가?  

옆으로 보니 타워로 사람들이 개미줄처럼 들어가고 있다. 

함께 따라서 들어가니 그곳이 청량리 역이고 백화점은 아직 오픈 시간이 안된 것이다. 

역 안으로 들어가면 좀 시원하리라 기대를 하였건만 인파로 밖보다는 좀 낫지만 여전히 땀은 뚝뚝 떨어진다.

백화점과 연결된 곳이 열려 있고 우리가 만나기로 한곳은 롯데 백화점 7층 식당가라 역사안에서 연결된 롯데 백화점으로 진입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내리니 영화관이 보이고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보인다. 

너무 더워서 시원한 음료를 먹으려 하니 사람이 상대를 하지 않고 거시기한 기계가 나를 반긴다. 

영화관 멤버냐 묻길 때 아니라고 했더니 셀폰 번호를 넣으란다.

미국 할매가 셀폰 번호가 있어야지...이래 저래 만지다 음료 마시길 포기. 

돌아서 보니 카운터에 사람들이 주문한 영수증으로 팝콘을 받아 먹는게 보였다. 카운터의 아가씨인지 학생에게 주문을 할 수 있는지 물으니 너무 불친절하게 일언지하에 묵살을 한다.

결국 물도 못 마시는 상황이 되어 넋을 놓고 앉아있는데 갑자기 내 고향 한국이 왜 이리 서글픈지.

7명의 친구들이 모두 모여 기차를 탔다. 

거의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탔나? 기억이 가물가물..기차 지정된 자리에 앉자마자 고등학교 때는 수다를 떨면서 설렘을 표현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의자에 엉덩이가 닿자 모두 눈을 감는다. 

나이가 주는 피곤함과 더위에 시달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10분가량 자다가 보니 친구들이 모두 잠이 들어있다. 

한순간 "이게 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또 한번 서글픈 생각이 나의 현실에 정신들게 한다.

한참 창밖의 스피드를 즐기다가 안내방송을 들으면서 역에서 내려 거리로 나오니 여전히 삶을 듯한 더위가 우리를 반긴다. 

친구중에 하나가 고등학교 시절 가져다니던 것과 같은 면 손수건을 만들어와 하나씩 나눠준다.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기도 전에 비릿한 땀으로 젖어가는 내 손수건.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나에게 이 한여름의 더위는 손수건을 쥐고 다닐 초인간적인 능력을 주었다.

택시를 타면서 먹을거리를 사야하지 않냐는 친구말에 

그냥 아무거나 먹자, 

부엌에서 해방된 시간을 갖자, 

난 안해 

등등 분분한 의견을 뒤로 하고 한명의 친구가 과자 서너봉과 본인은 죽을 먹어야한다고 죽 2봉지를 사가지고 펜션에 들어갔다. 

들고 올라가면서 날씨타령을 하다보니 아침에 멋지게 올리고 온 머리가 비 맞은 것처럼 땀에 절었다.

시원함을 느끼기도 전에 샤워를 하고 팬션을 둘러보고 아줌마들 특유의 평가를 마치고 시원한 바닥에 드러누웠다. 

재봉에 소질이 있는 친구가 우리의 여행을 위해 만든 옷이라며 셔츠 보따리를 풀렀다. 

하나씩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옷들을 입어보고 접어보고 하면서 감사를 전하고 사진을 찍자는 제안에 모두 아름다운 포즈를 취하면서 셔터를 눌러댔다. 그야말로 환갑여행 기념 사진.

사진찍기가 끝나자 고등학교 다른 친구들의 안부와 자식 이야기, 건강 이야기를 나누면서 40년이 지난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는 발갛게 상기된 우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배꼽 시계가 배가 비었음을 알릴때 식당에 음식을 주문하려니 배달이 안된다는 사형선고보다 더 무서운 대답을 듣고 우리 나이에 한끼 굶는 것도 축복이라 결정할 무렵, 윗 팬션에서 저녁 식사로 고기를 굽는 지 정말 머리가 돌 지경의 그립고 아름다운 냄새가 창을 넘어 스멀 스멀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