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푹 젖어 이유없이 짜증스러운 낮을 보내고 설빙이 푸짐한 음식점에서 백주 한잔씩을 한 후에 우린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화색이 돌아오는 우리의 정겨운 잔치는 마무리되었다. 

이제 우리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친구가 만들어 준 된장과 고추장을 짐에 넣고 제자들이 보내준 고춧가루를 끌고 공항을 나오면서 연신 눈물이 난다.

엄마의 마지막 모습도 미치도록 마음이 아프고 동생이 들어주는 나의 짐을 보면서도 이젠 다시 못 올까 싶은 생각도 들면서 

스스로 감상에 빠져 눈물로 표현을 하고 말았다.

" 오늘이 마지막 일 수도 있구나. 엄마가 얼마나 살겠니..."

90이 다 된 엄마의 힘없는 말 소리에 또 한번 가슴이 무너진다. 

" 엄마, 건강하셔야 내년에 또 만나요. 식사 잘 하시고 운동 열심히 하셔. 내년에 또 만나요."

말도 안되는 위로라고 하고는 목이 메인다. 이런 이별이 몇 번이나 가능할 지 생각하면...이런 불효를 하면서 난 비행기에 올랐다.

유리창에 기대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내 모습에 어릴 적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했던 것들이 기억난다.

여드름과 뽀루지로 고생할 나이에 엄마의 얼굴을 보니 아주 부드러운 도자기 표면같은 그러나 조금은 완성된 듯한 피부결을 기억한다. 기미로 햇볕으로 그을린 피부에 세월을 흠뻑 담았지만 엄마의 그 평온했던 피부가 새삼 나에게도 불쑥 와 있었다.   

더워서 반은 미쳐서 지냈던 서울의 시간. 

평생 흘릴 땀을 이번 여름에 모두 쏟아냈고 40년만에 만난 늙은 고등학생들과 함박 웃음을 나누며 소원풀이 했고 지난 몇년동안 향수병을 앓았던 시간을 맘껏 사용했지만 그래도 늘 돌아오는 시간엔 아쉬움만 남는다. 

가로수도 하늘도 그나마 공기마저도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 그런지 그립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값진 추억을 만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