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자전이 끌려 나간 뒤로 나는 재수가 옴 붙었지.연거푸 몇 번 잃었지. 가져간 돈이 바닥났어.
나중에 나는 룽얼이 바꿔치기 한 주사위로 속임수를 쓴 걸 알았지.
당시는 아무것도 모르고 다시 주사위를 흔들어 던졌지.
룽얼은 '칠'을 외치며 주사위를 던졌지.
구멍을 뚫어 수은을 넣어둔 주사위는 몇 바퀴 구르다 '칠'에서 딱 멈췄어.
나는 외상 장부를 가져오라 했어.
외상 장부를 들여다보니 나는 이미 반년 전에 빚을 지기 시작해서
우리 조상이 남겨준 가산을 전부 탕진했더군.
하는 수 없이 칭러우를 나왔어.
허리띠로 콱 목을 매 죽고 싶기도 했어.
아버지가 이번엔 나를 때려죽이지 않을까?
길거리에서 개죽음 당하느니 그게 낫겠다 싶어 집으로 갔지.
어머니와 아내 자전이 맞아주었어.
나는 도박을 해서 재산을 다 날렸다고 말했지.
어머니는 이게 다 아버지 탓이라고 했고 자전은 앞으로 내가 노름을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했어.
방에서 딸 펑샤가 나오더니 할아버지가 나를 때리려고 하니 도망가라고 하더군.
아버지는 날 때리러 뛰어오다가 몸이 기우뚱하며 넘어져 혼절했지.
아버지는 내리 사흘 동안 침대에 누워 계셨다네.
삼일 뒤 아버지가 나를 침대 가로 부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
"푸구이, 노름빚도 빚이다. 우리 땅 백여 묘와 이 집을 모두 저당 잡혔으니 내일 사람들이 동전을 갖고 올 거다.
난 늙었으니 네가 그걸로 빚을 갚아라."
나는 아버지가 날 때려 죽일 줄 알았는데 그리 말하니 눈가가 시큰거렸어.
나는 동전을 지고 십리도 넘는 길을 걸어 룽얼에게 갔지.
"오셨네요. 도련님."
그런데 내가 마지막 동전 무더기를 내려놓으니 그가 이리 말하더군.
"푸구이, 여기 놓게."
룽얼은 술 한잔 하고 가라 했으나 나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어.
가만 생각해 보니 겨우 하루 돈을 나르고도 사지가 다 풀릴 정도로 힘든데,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상들이 고생했을까 싶더라구.(50p)
그 생각에 쭈그리고 앉아 꺼이꺼이 울고 있는데 우리 집 머슴 창건이 가방을 들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네.
"도련님!"
"도련님이라 부르지 말고 짐승이라고 불어."
"빌어먹어도 황제는 황제고, 돈이 없어도 도련님은 도련님이죠.
우린 같이 울었다네.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가서 빚을 다 갚았다고 말했어.
"쉬씨 집안은 두 망나니를 낳았어."
아버지가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말씀하시더군.
이틀도 되지 않아 룽얼이 우리 집을 찾아왔어.
그 모습이 완전히 변했더군. 입에 금니를 두 개나 해 박았어.
그는 우리 집이며 땅을 죄 사들이고서는 자기 재산을 살펴보러 온 거였어.
우리는 집을 비우고 초가집으로 옮겼지.
날이 저물 무렵이었는데 몇 소작인들이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지.
"나리."
"이제 그렇게 부르지 말게나."
아버지는 걸어가다가 두 다리를 떨며 똥통 앞에 이르더니 허리띠를 풀고 쪼그려 앉으셨네.
그러다 아버지는 똥통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왕시라는 소작인이 달려와 일으켜줬지.
"자네, 예전에 내가 넘어지는 거 본 적 있나?"
"없습니다요. 영감마님."
아버지는 그러고 허허 웃으셨는데 잠시 후 눈을 감으셨다네.
우린 초가집으로 이사와서 짐을 정리하던 중이었어.
똥통 앞으로 달려가보니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네.
그 뒤로 나는 기력을 잃고 종일 초가집 앞마당에 앉아 눈물을 흘리거나 한숨을 쉬며 시간을 보냈지.
펑샤는 종종 내 곁에 앉아 놀았어.
"할아버지가 넘어지셨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또 묻더군.
"바람이 불어서요?"
며칠 동안 어머니는 나를 볼 떄마다 말씀하셨네.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으면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은 법이란다."
며칠 뒤 장인이 집에 찾아왔지. 자전을 데려가겠다면서 말이야.
장인의 성화에 자전이 가마에 올랐어. 펑샤가 뛰어나와 가마에 올라타는데 자전이 아이를 밀어내더군.
장인은 자전이 가는 길에 계속 징과 붕을 치고 풍악을 울리게 했어.
펑샤가 뛰어와 내게 말했지.
"아빠, 엄마가 가마 타고 갔어요."
"펑샤, 내가 네 아빠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아빠도 제가 펑샤라는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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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구이 노인은 이야기를 마치고 '나'를 보고 허허 웃지요.
나는 푸구이 노인의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푸구이 노인은 다른 노인과 달랐거든요.
푸구이 노인은 완전히 달랐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기 좋아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걸 좋아했다. 마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한 번, 또 한 번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 같았다. (63p)
그렇죠.
바로 이게 이야기의 힘, 소설의 힘인 것 같습니다.
우리 일상에서 숨 가쁘게 지나가는 시간들.
그걸 돌아보는 힘을 가진 사람이 바로 '이야기하는 사람', 소설가겠죠.
혹은 수필 같은 논픽션을 쓰는 작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로 작가입니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걸 이야기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면 그 삶을 다시 살아보는 것이 되거든요.
그때의 삶이 아니라 같은 삶을 다르게 다시 살아보는 겁니다.
(당신의 삶 혹은 누군가의 삶을) 새롭게, 의미 있게 다시 살아보는 것-.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소설)를 읽으면
그렇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는 'again'보다는 'one more time'을 말할 겁니다.
저와 함께 명작소설을 읽으며
당신의 삶과 누군가의 삶을 다시(one more time)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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