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설 읽어주는 소설카페입니다.도리스 레싱의 명작소설, '다섯째 아이'를 읽었습니다.
모두들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섯쨰 아이'를 명문장 위주로 정리하며 후기를 남겨 볼까 합니다.
독서지도사로서 여러분 독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여기서 소개해드리는 명작소설들은 반드시 정본으로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그래야 요약도, 감상도, 후기도 더 의미 있게 다가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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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은 건축 자재를 공급하고 설계하는 회사의 판매 부서에서 일했고, 데이비드는 설계사였다.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집(home)'을 꾸리기 원하는 두 사람의 직업은 묘하게도 '집'과 닮아 있지요.
그들은 벽 쪽으로 이미 몰려 서 있는 사람들을 밀치며 춤추는 사람들에 부딪히지 않도록
자신들의 잔을 머리 위로 높이 올렸다.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석처럼 이끌리죠.
남녀간의 이성적 매력이었을까요?
그보다는...
거울을 보듯 서로가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이 닮았을까요?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꽃장식처럼 주변을 맴도는 게 닮아서였죠.
그러고 두 사람은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잔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지요.
'잔'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교류'하는 게 목적인 도구입니다.
그러나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그 '잔'을 서로의 머리에 왕관처럼 쓰고
사람들을 '피해서' 움직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만의 '왕국'을 건설하죠.
그게 두 사람에겐 '집'인 것이고요.
그들의 '집'은 처음부터, 사회와 섞이지 않고 고립되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에게 태어난 벤이란 다섯째 아이의 속성은 그러니까, 대물림이었던 셈이었지요.
이제 그는 해리엇과 함께 그 집의 연장이자 확대판인 또다른 집을 창조하고 싶었다.(13p)
또다른 집
미셀 푸코는 이런 형태의 공간을 가리켜 '헤테로토피아'라고 칭합니다.
흔히, '유토피아'라고 하면 다들 아시죠?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는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도 그 밖의 다른 온갖 장소들에 대해 “이의제기”를 하고 그것들을 전도시키는 장소,
말하자면 실제로 위치를 갖지만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라고 이야기합니다.
-헤테로토피아/미셀 푸코 저
헤테로토피아는 무수한 문학작품에서 활용되고 구현됩니다.
'다섯째 아이'에서 벤의 아빠, 데이비드(건축 설계사)는 바로 그런 '다른' 공간,
헤테로토피아를 설계하려 했던 것이죠.
그 집은 외관상 거대한 빅토리아풍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식이 많아야 했지요.
그 집에 장애나 문제를 가진 아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가슴은 행복에 겨워 두근거렸다.(15p)
아직까지는 자신들의 것이 아닌 뭔가가 감추어진 듯한 신비한 정원으로 나갔다.(17p)
그들의 신비한 집은 그렇게 완성됩니다.
-저당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지. 얼마 동안 상환할 예정이냐?
-삼십 년이오.
데이비드의 아버지의 돈으로.
그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이나 아기가 아니라 행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26p)
행복은 손에 잡히는 어떤 '형상'이 아닙니다.
자신, 아기, 아내, 가족, 일, 사람들,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을 통해 스며드는 느낌에 가까운 것이지요.
그런데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행복' 자체를 과정으로, 목적으로, 목표물로 거머쥐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 행보를 방해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시작부터가 그랬습니다.
벤은 처음부터 이 부부와 이 가족에 들어올 틈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이 '명작'인 이유는 숱하게 많지만
이런 빈틈없는 플롯과 설정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어떤 소설은 평이한 문장 속에서 몇 개의 번득이는 명문장이 포진해있다면
'다섯 째 아이'는 그런 식의 명문장보다는
문장과 설정이 맞물려 돌아가며 직조해내는
'평이한' 문장, 그 자체가 명문장이 됩니다.
그 속에 깊은 사유와 철학과 윤리가 서브텍스트로 담겨져 있으니까요.
한 권의 소설에 담긴 모든 사유와 의미를 건져올릴 수는 없겠지만,
힘닿는 대로 그걸 낚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이 소설을 완독하셨다면 다시 앞으로 돌아가,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시작이 어땠는지 살펴보시길 추천합니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는 위에 걸어드린 표지와 제목으로 후속작이
그 이듬해에 출간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번역돼 나오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읽으실 수 있는 분은 영어로 접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명작 소설로 또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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