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 후 20년쯤 지난 어느 추수감사절, 세 자매가 모였을 적에:
상단 왼쪽부터: 나의 막내, 큰언니 딸, 작은 언니 막내,  나의 큰 아들, 큰언니 막내, 큰언니 장남 -

 

큰언니, 엄마, 나, 그리고 7 년전에 하늘나라로 간 작은 언니. 그때 이미 투석 중이었다. 

언니네가 살던 집은 한 지붕 아래 똑같은 플로어 플랜(floor plan)의 두 집이 있는 듀플렉스(duplex)였다.

입구도, 앞/뒷마당도 따로였지만 지붕은 한 지붕이었다.

한 지붕 아래, identical 해 보이는 집이 두 채.

물론 셋집이었다.

1층엔 거실, 부엌, 다이닝 룸이 있었고, 침실들은 이층에, 그리고 널찍한 지하실도 있었다.

난, 그 당시 초등 4학년이었던 조카딸 수진과 한방을 썼다.

큰 조카는 7학년, 그리고 두 살짜리 늦둥이..

조카아이들은 이모인 나를 무척이나 따랐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수진은 하루에 있었던 얘기들을 쉴 새 없이 종알종알 얘기해주었고,

큰조카도 제법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듣기 좋은 저음으로 들려주고..

모두, 나의 훌륭하고 기특한 영어 선생들이었다!

 

엄마는 널따란 뒤뜰에 온갖 한국 채소들과 꽃들을 심어 놓으셨다.

반듯하게 골을 만들고, 가지런하게 심은 온갖 채소들이 싱그럽고 탐스럽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뒷집, 옆집 할머니들의 감탄, 선망과 칭찬을 듣는 재미에 더욱 신나 하셨고..

 

한국에서 벼락치기로 운전면허증을 받아 왔지만, 전혀 실전 경험이 없었기에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했다.

한두 번 형부와 운전 연습을 시도해 보았지만 무리였다.

결국, 드라이빙 스쿨에 전화하니 흑인 청년이 왔다.

동양 아가씨가 신기했던지, 운전 가르치는 것보다 잡담 따먹기에 더 열심이었다.

어느 날은,  전날밤 온밤을 꼬빡 샜노라고 충혈된 눈으로 얘기해, 불안해한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첫 도전에 무사히 라이센스를 받았다.

 

형부는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처제가,

미국에 와서 한 달 만에,

운전 필기시험도, Road test도 첫 도전에 당당히(ㅎㅎ) 합격을 하니

그냥, 감탄을 하신다.

 

나에게는 언니가 둘이 있다.

큰언니는 10살 위이고, 작은 언니는 7살 위이다.

큰형부는 내가 아는 한국 남자들 중,
가장 젠틀멘에, 가장 호인이시다.

언니에게도 큰소리 한번 내는 걸 본 적이 없다.

으레,

큰소리도, 잔소리도 언니 쪽이다.

큰언니는 미국에서 6년째 살아오면서

일부러 운전 배우는 것을 거부해 왔다.

이유는?

일단 언니가 운전을 배우면,

그러잖아도 집안일을 잘 도와주지 않는 형부인데 모든 것을 언니에게 미룰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미국에 오기 얼마 전에 형부는 새 차를 구입했는데

그동안 몰던 헌 차는,

Newark 에서 주유소를 경영하는 친구에게 임시로 맡겨 둔 상태였다.

두 달째가 되어가니,

여간 미안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처제가 라이센스를 받았다.

 

Road test를 통과한 날,

형부가 내게 물으셨다.

‘혼자 운전할 수 있겠느냐’고..

난, 겁도 없이 예스!

그리하여,

나는,

미국에서 이제 겨우 몇 시간 운전을 연습하고,

라이센스를 받았다는 자신감 하나만으로,

복잡한 Newark 의 로칼 거리들을 달리고,

앞에 가는 형부 차를 따라가며 뉴저지 파크웨이 고속도로로 진입하는데,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처음엔 다른 방향으로 갈려다,

아차! 하며 옆으로 차선을 바꿀 때, 일차 사고가 날 뻔했고!

그 후론,

형부 차를 따라 고속도로를 3-4십 분 달려 집에까지 오는 데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아무튼,

그날 사고 없이 집에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음은

오직, 주님의 도우심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밤길에, 앞서가는 차를 뒤따라가는,

길도 모르고 경험도 없는 완전 초보 운전..

집에 도착했을 땐,

형부와 언니가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두 손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고…!

 

형부에게서 물려받은 차, 그린 색의 몬테칼로였다.

파크웨이라 불리던 뉴저지의 고속도로.. Garden State라는 이름에 걸맞게 도로 주변이 참 아름다웠다.

가을엔 단풍이 또 얼마나 화려했던지..

탁 트인 그 파크웨이를 혼자서 운전하노라면

마치 온 세상을 내 품에 안은 듯, 하늘을 날기라도 한 듯,

마냥 행복했다.

 

항상 바쁜 아빠 외에는  라이드를 부탁할 사람이 없어 늘, 아쉬웠는데

운전하는 이모는 인기 짱, 일 수밖에!

문제는 아직은 서투른 운전실력에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KFC에서 치킨을 사 먹이고 돌아오는 길에 우회전을 하다가 갑자기 꽝!!

전봇대에 차를 들이받은 일이며,

Turn about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쩔쩔매며 당황하던 일이며..

 

큰 조카는 지금도, 심심하면  이 이모를 놀린다.
‘Emo was a terrible driver!' 였다고..

 

뉴욕에도 가끔 나갔지만

주말엔 주로 뉴저지 근방의 교외로 나갔다.

가게는 위험한 Newark에 있었지만

집이 있던 주택가나 교외로 조금만 나가면 너무나 아름다운 미국의 자연경관에 감탄했다.

울타리도, 담장도 없이 그저 넓디넓은 잔디밭으로 연결된 주택들이며

도로에선 보이지도 않지만, 깊숙이 드라이브 웨이에 숨겨져 있는 듯한

웅장한 저택들을 구경하는 일도 재미있었다.

가게를 마치고 처음으로 뉴욕에 시장 보러 나가던 날,

뉴욕 들어가는 대로변에서 갑자기 차 앞으로 누군가 불쑥 상체를 들이민다.

볼록 나온 젖가슴을 열어 보이는데, 성별이 뭔지도 모를 이의 깜짝, 기습노출에 오직 경악!

 

이처럼,

본래 환상 같은 것도 없었지만, 

미국은 나에게 너무도 민낯으로 다가왔다.

 

아침 일찌기 가게에 나갔다가

가게 닫고 어둑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던 언니에게서 들었던 슬픈 사연 한 토막.

엄마가 미국 오시기 전에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엔, 

아이들만 집에 두고 하루 종일 밖에 있으려니 늘 불안했는데

하루는 큰조카가 전화해서 놀란 목소리로 'fire'라고 하더란다.

그 당시엔 조카가 영어도 익숙지 않고 한국말도 잊어가던 때라 더 자세한 얘기를 묻지도 못한 채

우선 소방서에 신고하고, 놀란 맘으로 급히 집으로 달려가 보니

아이가 장난하다가 손가락을 다쳐 피가 조금 났는데, 아이도 겁이 난 마음에  엄마에게 전화해서 '피' 어쩌고 하는 걸

'fire'로 들었던 거다.

언니에게서 이 얘기를 들으면서 마음으로 울었다.
가게에서 집으로 오기까지 언니와 형부의 마음이 어찌했을지, 감히 상상을 할 수 없다.

그래선지

영화 '미나리'를 보는 데,

언니와 아이들의 모습이, 영화속의 인물들과 여기저기

오버랩되면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에 계신 분들은,

별 감흥을 받지 못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는데

나도, 언니도, 우리 큰 아들도, 언니의 딸 수진도, 

'Did you cry?' 물으니, 모두 주저없이 'yes ' 라고..

그렇게 어려운 시간들을 지났지만,

큰조카는 프린스턴 대학을 나와 와튼에서 MBA를 한 수재가 되어

빌게이트에게 직접 스카우트 되고, 월가의 은행에 vice president, 

와이프는 뉴욕의 판사, 

둘째도 유펜을 나와 사업가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 형부의 Facebook에, 마침 결혼사진이 있어서 빌려왔다. 불자이셨던 시어머님께서 원하셔서 신흥사에서 식을..-

언니는 은행원 시절에 형부를 만나 결혼을 했다.

형부가 먼저 무역회사 지점장으로 미국으로 떠나고,

언니도 어렵게 비자를 얻어 아이 둘과 함께 뒤따랐고..

우리 시골집에는 언니가 떠나면서 남긴 책들이며 서류들이 있었다.

형부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책들은 대부분 영어로 쓰인 원서들이 대부분이었다.

영문 소설책들도 많았다.

한 뭉치의 노트북들도 있었다.  

열어보니 형부의 일기장이었다.

영문학도답게 영어로 기록한 일기들이었다.

세상에 이게 웬 휑재람!

형부께 조금 미안한 마음이었지만, 몇 날 며칠을 쉼 없이 읽었다.

중간중간 빠진 부분들도 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부터 결혼을 앞둔 시점까지 쓰인 기록들….

거기엔 언니와 연애할 당시의 기록들도 있었다.

 

상상을 해 보시라.

당시 유행하던 '속도위반' 케이스였으니….얼마나 흥미진진 했겠는가를...!

나중에 들으니 내 밑의 남동생도 그 일기장들을 정독했다는..

형부에겐 말할 수 없었지만,

몇 년 전이었나..?

언니에게 어느 날 고백했다.

언니는 진실로 화를 냈다.

말하지 말걸 그랬나..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