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도 인연이 있듯 책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운명과도 같은 만남이라고나 할까.

몇 달 전 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박범신 작가님이 쓰신 <소소한 풍경>이라는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보통은 자기 개발서에만 편독하는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뜻밖의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웬일인지 뭐에라도 홀린냥 집어 들었고,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첫 문장들부터 글귀가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이었다. 사물을 묘사하는 글귀라든지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글귀들이, 아름다운 자연풍경이나 그림을 보는 것 마냥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경이롭기까지 한 독서였다. 그 아름다움에 홀려 이상할 법한 스토리도 변태스럽지 않게 느껴졌다.

나를 감동시킨 수많은 글귀들 중에도 유독 심하게 공감하고 깨달음을 준 부분이 있었다. 

ㄱ이라는 여자 주인공의 부모에 대한 묘사 중 하나였다. ㄱ의 아버지는 늘 밀짚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늘 정수리 부분을 동그랗게 잘라내어 구멍을 냈다고 한다. 그런데 ㄱ의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한탄하며 구멍 뚫리지 않은 새 밀짚모자를 기오코 다시 씌웠다고.

ㄱ이라는 여자는 그 구멍 뚫린 밀짚모자와 구멍이 뚫리지 않은 밀짚모자를 부모 각자의 '숨구멍'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부부인들 그 사이에 왜 '밀짚모자'가 없겠느냐며. 함께 있어도 '숨구멍'이 따로 있어야 겨우 유지되는 것이 1대 1의 관계라고 했다. 내가 박범신 작가님의 의도를 잘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너무나도 공감했기에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남편과 함께 살고 있지만 우리들 각자만의 '숨구멍'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불현듯, 서로가 서로의 숨구멍을 막고 있는지 인지조차 못한 체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표호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 서로의 숨구멍이 달라서 그렇구나...' 깊이 깨닫는다. 사실 답도 없는 깨달음일까? 답이 없다는 걸 앎에도 그 깨달음 하나로 마음에 안심이 드는걸 왜일까. 상대방과 나의 숨구멍을 이해하고 그 답답한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고 납득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의 숨구멍을 막고 있었던 적은 없을까? 

나만의 숨구멍은 무엇일까? 어디에 있을까? 언제 열리고 닫히는 것일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얼마큼 내 숨구멍을 막고 숨을 참아줄 수 있을까?

혹여 나와 관련도 없는 타인들을 위해 억지로 숨을 참고 있었던 적은 없지 않은가?

여기에서 '내 숨구멍은 왜 이렇게 생겼지?'라는 자아성찰적 자문보다는, 

'내 숨구멍은 이렇게 생겼구나... 나는 이런 면에서 숨을 쉬는 사람이구나' 하고 자아인식에 가까운 자문이 더 현명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깨달음은 분명 마음의 크기를 더 넓혀줄 것이고 삶은 한층 더 평온 해질 것이다.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많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니... 좋은 글이 갖은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도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