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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스의 세계 미술관 산책

필라델피아 뮤지엄 3)- 북유럽 르네상스 거장, 로지에 반데르 바이덴의 성화 아네스 (Shlee99) 2024-6-9  06:00:48

미국 Old Master 최고의 명작 - 북유럽 르네상스 거장 로지에 반데르 바이덴 <십자가 처형, 마리아와 성 요한의 애도>


"그림을 읽는다."


미술관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은 성경을 주제로 한 그림, 성화일 것이다. 기독교 미술사(Christian Econography)를 한 학기 수업하는데, 도통 무슨 이야기를 그린 그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성경적 지식과 이해가 없으니 그저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사조와 화가 위주로 분석한 것이 전부였다.


이후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5년간 성당 주보에 성화에 관한 글을 연재하며 비로소 그 신비한 세계와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하느님은 나의 작은 달란트를 이렇게 쓰시려고 미술사로 인도하신 것이 아닐까!이렇게 성화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미술사에서 기독교 도상학으로 분류되는 성화에는 이미지가 필수이다. 이콘을 의미하는 도상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그림에는 분명한 기독교적 요소와 내러티브가 포함된다. 이것을 읽어내지 못하면 비싼 입장료를 내고 귀한 시간을 투자해도 세상 재미없는 그림이 된다.


성경을 그림으로 그린 성화는 문맹자를 위한 언어이다. 본다는 의미에 앞서 읽어 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말은 아마 성화에 가장 적합한 말이다. 그 다음으로 그리스 신화화를 들 수 있고 모든 그림에 해당된다.


필라델피아 뮤지엄에는 미국을 넘어서 세계 최고의 성화를 보유한다. 15세기 북유럽의 거장 로지에 반데르 바이덴(Rogier van der Weyden, 1399/1400) <십자가 처형, 마리아와 성 요한의 애도 The Crucifixion, with the Virgin and Saint John the Evangelist Mourning>이다.




필라델피아 뮤지엄 공식책자에는소장품 중 가장 오래된 올드 마스터(Old Master) 최고의 위대한 걸작으로 소개하며 애정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과시한다. 관람객은 19세기 이전의 대가들에게만 부여하는 명예로운 올드 마스터의 귀한 작품을 감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전 세계의 미술관을 다녀 보았지만 이 공간 처럼 독특한 경험을 한 것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여기는 미술관내의 작은 경당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미술관은 그림 속 배경 담을 실제 공간에 프레임으로 설치하여 그림을 넣었고 제단과 기단을 제작하였다. 양 옆은 화려한 태피스트리로 장식하였는데, 바티칸 박물관의 라파엘로의 공간을 연상케 한다.


편안하게 그림을 감상하게 놓여 있는 소박한 의자에 앉아 그림을 들여다 보면 저절로 묵상이 된다. 관람객은 뜻 밖의 장소에서 지친 발걸음을 쉬며 하느님과 대면 하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




<십자가 처형, 마리아와 성 요한의 애도> 패널에 유채화 1460 180.3 × 186.4 cm


이 작품은 19세기 중반까지 수백년 동안 기원과 출처를 알 수 없었다. 독립된 패널화로 각각 워싱턴 DC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과 프랑스의 디종미술관(Musee des Beaux- Arts Dijon)이 보유하고 있었다. 1945년 필라델피아 박물관의 고증으로 당대 드물었던 두 폭 제단화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12사도 중 사도 요한만이 유일하게 성모 마리아와 함께 그 자리를 지켰다. 가장 어린 나이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사랑한 제자였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 성모 마리아를 부탁할 정도였다. 로지에는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어머니와 세상 전부였던 스승을 죽음을 지켜보는 제자의 슬픔을 전달하고 있다.



그림은 오랜 연구 결과 프랑스의 카르투시안 수도원(Carthusian monastery)에 주문한 기도용 제단화로 추측되고 있다. 극단적인 금욕과 절대적 침묵을 추구한 수도원의 은둔 생활을 반영하듯 그림의 디테일은 극명하게 간결하고 경건하다. 마태오 복음서는 그리스도가 숨을 거두는 순간 정오부터 어둠으로 온 땅이 덮였고 성전 휘장이 아래에서 위까지 두 폭으로 찢어졌다고 전한다.


로지에는 성서 내용처럼 배경을 암흑으로 처리하였고 삭막한 회색 벽에 두 쪽의 화려하고 선명한 붉은 천을 걸쳐놓았다. 십자가 꼭대기에 새겨진 선명한 붉은 라틴어, 유다인의 왕 예수 라는 의미의 ‘INRI(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아래 그리스도의 신체는 처연하게 매달려 있다. 참혹한 장면에 혼절하는 마리아를 부축하는 성 요한 또한 허망하기 그지없는데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다. 로지에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비극적이고 암울한 순간과 마리아의 인간적 절망은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걸작을 남겼다.


로지에는 당대 중세 고딕 예술을 극복하기 위해 기독교의 인간화라는 대명제를 환기시키는 기념비적 아이콘을 창조한다. 섬세하고 고귀한 조각적 인물과 엷은색 옷은 화려하고 강렬한 붉은색 원색 바탕에 대비시켰다. 그 옷들의 풍부하고 유려한 주름과 디테일은 세련되고 정교하다. 오른편 직사각형 붉은 천에 대항하듯 T자형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의 신체는Y자형으로 가시면류관과 오상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붉은색이다.



발치 아래 두개골과 뼈는 하느님이 처음 창조한 인류의 조상 아담을 상징한다. 정지된 화면에 그리스도의 허리에 걸쳐진 로인클로스는 슬픔의 메아리에 화답하듯 바람에 날리고 있다. 그는 과거 고딕의 감동적인 비애를 국제양식으로 도입해 압도적인 인간적 감정으로 승화시킨다. 분리된 두 폭의 주인공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감은 눈과 축 쳐진 머리는 거울의 반사경처럼 닮은 꼴이다. 이는 콤파시오(Compassio), 공동의 수난으로 모자간에 고통과 슬픔을 병행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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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초기의 북유럽 예술에서 로지에가 채택한 그리스도의 죽음은 도그마나 교리적 전달이 아니라 사실적 묘사와 인간의 감정에 호소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은 처참하다. 머리 깊숙이 박힌 가시관과 오상에서 흘러내는 피로 얼룩진 얼굴과 몸 그리고 늘어진 신체의 고통스러운 모습과 마리아의 처절한 비탄으로 신성과 인성을 공존시킨다. 로지에는 하느님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으로 완성되는 순간의 영원하고 격렬한 파토스를 전달한다.


그림은 박물관의 복잡한 공간과 북적 이는 인파와는 별개로 조용한 공소에 모셔 진 듯하다. 관람객은 마치 무대 위에서 상연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죽음과 비통한 장면의 목격자이자 증인이다. 동시에 단출하고 수수한 제단 앞에서 기단을 장궤 삼아 기도와 죄의 사함을 청하고픈 마음이 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성모 마리아의 슬픔에 동화되고 그리스도의 성흔(Stigma)을 체감하며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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